교수님도 선생님도 아닌…우린 캠퍼스의 '마박사'

입력 2012-11-17 07:24:12

지역 6천여 명 시간강사들의 비애

'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주장하는 문구가 적힌 마박사(마네킹 박사). 시간강사의 비애를 닮았다.

올 9월부터 지역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시작한 김모(37) 씨는 최근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캠퍼스에 주차한 자신의 차에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교직원과 실랑이라도 벌여 딱지를 반납(?)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학과 사무실 조교의 전화 한 통에 해고될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강사가 되었을 때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자체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교수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입니다. 그러나 강단에 서 보니 시간강사 일이 너무도 고단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까지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때면 외국 유학까지 가서 따온 박사 학위를 반납하고 싶습니다." 김 씨의 푸념이다. 현재 김 씨 같은 처지의 시간강사는 전국적으로 7만8천여 명. 대구경북에는 6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보따리장수'에서 '투명인간'으로 전락.

시간강사는 대학의 강단에서는 엄연히 '교수'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학기마다 자신이 담당하는 강의 시간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학 내 위치는 모호하다. 정식 교원은 아니면서 정식 교원의 역할을 해야 하고 언제 자신의 밥그릇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할지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이 대학 저 대학 자리를 알아봐야 하고 '보따리장수'라는 좋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호칭부터 애매하다. 학생들은 '교수님'이라 부르고 전임교수들은 '선생'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교수는 '대학에서 전문 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고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교수도 선생도 아니다.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상 교수와 선생은 모두 교원이라는 신분에 포함되지만 시간강사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고등교육법 제17조에 따르면 '학교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제14조 제2항의 교원(총장 및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 외에 겸임교원'명예교수 및 시간강사 등을 두어 교육 또는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그나마 일부 예의 바른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위안이 될 뿐이다. 이 마저도 요즘은 드문 케이스다. 대학 간 무한경쟁이 벌어지면서 가장 먼저 '파리목숨' 신세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보따리 장수라는 말도 고마울 따름이다. 경북대의 한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확연히 다른 태도로 대하는 학생들을 보면 비애감마저 느낀다.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니면 강의한다고 해서 '보따리장수' 취급을 받더라도 견딜 수 있었지만 학생들이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가면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고 털어놨다.

◆빚과의 전쟁

처우라도 좋으면 견딜만하다. 그러나 시간강사를 오래 할수록 빚만 늘어날 뿐이다. 쥐꼬리만한 강의료로는 품위 유지는 커녕 생활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시간당 강사료는 국립대학인지 사립대학인지, 4년제인지 전문대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많게는 6만원도 받고 적게는 2만원도 받는다. 같은 비정규직인 외래강사들과 비교해도 천양지차다. 경산의 한 사립대 시간강사는 "산업협력교수 등 일부 외래 강사들이 달랑 한 시간 수업하고 30만원씩 강의료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자괴감이 들 정도다"고 했다.

국립대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경북대 시간강사들의 주당 평균 수업시간은 4. 5시간. 시간당 강의료가 5만8천원 정도로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된다. 그나마 사립대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수업시간은 비슷한데 강의료가 낮은데다 대구에 사는 강사들이 경북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경우 자동차 연료비와 밥값이 더 들기 때문이다.

지역 사립대 몇 곳에서 5년째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이정미(40'가명) 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집 가까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다. "경산은 그나마 가까운 편입니다. 차로 2시간 이상 가야하는 대학에 강의를 다니면서 사용하는 기름값이나 밥값, 고속도 통행료 등을 빼면 오히려 적자입니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김밥 한 줄이나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어느 학교에서 강의를 할 것인가는 본인의 의사보다는 지도교수나 출신대학 교수들의 추천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기 중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곧 방학이 시작되면 카드값과 대출금 이자 갚는 일이 걱정이다. 방학이면 실업자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법은 개악

최근 시간강사에게는 반가울 만한 소식이 들렸다.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시간강사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한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을 올 8월 입법 예고한데다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소식이었다. 생활고에 시다린 시간강사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었다.

시간강사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덜어줄 것 같은 소식이었다. 6개월마다 계약하던 것을 1년 이상으로 늘리고 강의료가 인상되고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정작 시간강사들은 새로운 고민에 휩싸였다. 바로 대량 해고의 위험이다. 특히 이 법이 주당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를 교원확보율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주당 4, 5시간 강의하는 상당수의 강사들이 강단에 설 수 없게 된다. 일부 강사들에게 강의 시간을 몰아주면 그만큼 다른 강사들의 '시간'이 빼앗기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를 대학의 교원확보율에 포함시킬 경우 시간강사의 대량해고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학이 교원확보율에 반영되지 않는 비전업강사를 대량해고 하거나 전업강사 중에서도 강사법 시행에 따라 임용되는 강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지역대학 내 시간강사 수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경북대의 경우 2010년 1천172명이었던 시간강사수가 2년 새 994명으로 줄었다. 영남대의 경우도 지난해 986명에서 90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대구대도 260명에서 238명으로 줄었다.

김임미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 분회장은 "많은 대학들이 겸임교수'초빙교수는 늘리는 반면 시간강사는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강사법은 대학들이 전임교원을 확충하지 않고 겸임교수'초빙교수 같은 비전업강사들만 써도 교원확보율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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