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비파열성뇌동맥류 수술받은 신경옥 씨

입력 2012-11-14 07:18:23

"눈 한쪽 가려야 덜 어지럽고 걸을수 있죠"

신경옥 씨가 시누이 김영희 씨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신 씨는
신경옥 씨가 시누이 김영희 씨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신 씨는 "뇌혈관이 시신경을 눌러서 사물이 겹쳐 보여 항상 어지러워 왼쪽 눈을 가린 채 부축을 받아야 겨우 걷는다"고 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2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신경옥(53'여'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는 이야기하는 내내 왼쪽 눈을 손으로 가렸다. 어지럼증 때문이다. 신 씨는 "수술한 뒤 뇌혈관이 시신경을 누르면서 물건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현상이 생겼다"며 "너무 어지러워서 왼쪽 눈을 가렸더니 어지러운 증상이 덜해 늘 왼쪽 눈을 가리고 생활한다"고 말했다.

매일 신 씨 옆에서 병간호하는 시누이 김영희(53) 씨는 "착하고 얌전해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인데 왜 이리도 굴곡이 많은지 너무 속상하다"며 "평생 물건이 두 개로 겹쳐 보이고 어지러워 생활에 지장이 많다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고 했다.

◆부도와 떠나간 남편

신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던 남편, 착한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가정주부였다. 이 행복이 산산조각나기 시작한 건 1996년, 남편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슈퍼마켓 체인점을 차린다고 할 때부터였다.

남편이 하는 일이라 믿고 지켜봤지만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거기에다 동업자로부터 사기까지 당해 빚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2억원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결국 사업은 부도가 났고 빚쟁이들이 신 씨의 집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빚쟁이들이 밤에도 찾아와 문을 두들기고 집에 있는 물건을 다 뒤지고…. 사는 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한 번은 '그래, 우리 집에 아무 것도 없다. 와서 뒤져봐라'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음대로 뒤지게 했습니다. 멋쩍었는지 그냥 돌아가더군요."

빚쟁이가 들이닥쳐 집안을 어지럽히던 어느 날 남편은 신 씨에게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신 씨는 이후 7년 동안 계속 빚쟁이들에게 시달렸고 이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증이 찾아왔다.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신 씨는 처음에는 남편을 기다렸다. 문도 잠그지 않았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렸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니 기대가 슬슬 사라지더라고요. 그래도 걱정되고 궁금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들도 어릴 때는 떠나간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다 크고 나니 이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네요. 연락이라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신 씨마저 쓰러지다

신 씨가 쓰러진 건 지난 10월 16일. 청소 용역업체에 소속돼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겨우 짬을 내 간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신 씨는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평소 앓던 우울증 약 때문에 생긴 두통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괜히 아프다고 하면 어렵게 얻은 청소 일자리마저 못할까봐 차마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다음 날 신 씨는 너무 아파서 결국 대학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 받아든 병명은 '비파열성뇌동맥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시누이 김 씨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신 씨의 전화를 받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너무 놀라 병원에 가는 것조차 겁이 났다. 마음을 추스르고 간 병원에서 조카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김 씨는 "너무 속상해 언니를 보고 한 첫 마디가 '어떻게 복이 이것밖에 안 되죠?'였다"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힘든 청소부 일을 겨우 구했는데'''"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다행히 수술해야 할 부위가 크지 않았지만 뇌혈관이 시신경을 눌러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나 신 씨는 걸을 때마다 어지러움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도 누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고 심하면 구토까지 한다.

◆더 걱정인 퇴원 후 생활

신 씨의 가장 큰 고민은 700만원이 넘는 치료비 마련과 퇴원 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털어도 50만원이 고작. 병원비는 780만원에서 730만원으로 줄었을 뿐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신 씨는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의료보호'생활보호 제도의 보호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2003년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도 탈락했고, 차상위계층에 선정됐지만 이마저도 신 씨가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탈락했다.

아들은 2년제 대학에 합격했지만 얼마 못 다니다 군대에 갔고 결국 자퇴한 뒤 지금은 자동차 정비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비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이 한 달에 버는 돈은 70만원 정도. 생활비, 자격증 공부, 신 씨 치료비까지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청소 용역 일을 더는 할 수가 없다. 시누이 김 씨도 최근 하던 사업을 손해 보고 정리를 한 터라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수술이 끝났을 때는 한고비 넘겨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제는 밀려 있는 병원비와 '퇴원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한숨만 나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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