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그들, 인생에서 지혜를 찾다

입력 2012-11-14 07:30:16

지난주 '아름다운 엔딩'을 읽은 몇몇 지인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 중에는 아름다운 엔딩을 하고 싶어졌는데, '나도 책을 통해 나만의 엔딩을 만들어 볼까' 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 것은 다소 불편하고,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아흔을 바라보시는 분과 예순을 조금 넘기신 분을 집필진으로, 그분들이 긴 세월 몸담고 계시는 성당의 '70년사(史)'를 만든 적이 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사사(社史)와 같은 역사기록물은 사료수집의 발굴과 정리 작업이 방대하여 홍보 출판 경험이 오랜 사람들조차도 많은 부담을 갖게 되는 일이다. 또한 사사 제작을 담당하는 사람의 노력 여하, 혹은 저자의 사관에 따라 그 결과물의 모양새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만큼 집필진이나 출판사의 책임이 무거운 일이기에 첫 기획 회의 이후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이후 긴 시간이 흘러 걱정이 어느 정도 흐릿해질 무렵, 첫 원고가 도착했다. 손 글씨로 채운 원고지에서는 잉크 냄새가 났다. 그 엄청났던 원고 분량과 이후 4년 4개월이라는 제작기간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분들의 말씀처럼 "바닷속 진주를 찾기 위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조각배 하나를 타고 망망대해를 나선 격"이었는지는 모른다.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이분들의 기억에 의존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기에 조각배를 탄 그분들이 내겐 몇 척 배보다도 커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만드는 동안 성당의 70주년은 무심히 지나갔다. 출간 일정에 연연해하지 않으시던 그분들은 결국 오랜 시간 끝에 너무나 견고한 텍스트로 단단하게 책을 만들어 내셨다. 전문가들로부터 이 책이 가톨릭교회 사사의 '꽃'이라는 찬사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기획자로서 오히려 집필진들을 통해 과거를 조명하는 진정성,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책이 나오고 몇 년이 흘러 그분들 중 한 분의 부고를 접했다. 마음 한 쪽에서 작은 바람 소리같은 게 들렸던 것 같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작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일과 같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살아온 인생의 지혜가 있다. 또한 누구나 자기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있다.

할머니의 육아 지혜, 나무를 잘 키우는 방법, 어머니의 요리 비책, 우리 가족표 교육지침, 독서일기 등 블로그나 인터넷 검색에서도 건져지지 않은 개개인의 역사가 있다.

내 삶을 통해 가슴으로 느껴오고 배워온 것들을 종이 위에 한번 펼쳐보자.

나윤희<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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