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았을까? 낚였을까?… 쿠폰 전성시대 허와 실

입력 2012-11-10 07:57:22

할인이거나 공짜의 기쁨 덜컥 받아든 당신

휴대전화 속에도 쿠폰(모바일 쿠폰)이 들어가는 등 쿠폰은 현대인의 소비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휴대전화 속에도 쿠폰(모바일 쿠폰)이 들어가는 등 쿠폰은 현대인의 소비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화폐는 물론 신분증, 신용카드, 명함 등과 함께 어엿한 지갑 속 식구로 살고 있는 녀석이 있다. 바로 '쿠폰'이다. 쿠폰을 들고 해당 업소로 가면 소비자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격을 할인받거나 아예 무료 혜택을 받는다. 또는 덤으로 사은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신조인 요즘 현대인들에게 참 요긴한 녀석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저런 말썽도 부리고 있다. 쿠폰이 마구잡이로 발행되면서 관리가 어려워져 지갑만 두껍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해당 업소가 사라지거나 서비스 정책을 바꾸면 쉽게 휴지 조각이 되는 등 쿠폰은 소비자들로부터 '애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쿠폰 전성시대

요즘 소비자들에게 쿠폰은 가장 애용되는 할인 수단이다. 최근 한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가 남녀 소비자 4천486명에게 물었더니 89.4%가 "할인 혜택 여부에 따라 지갑을 연다"고 답했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할인 혜택 수단으로 '할인 쿠폰'(30.1%)을 꼽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장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31.3%)였고 '영화관'(20.8%) 순이었다.

쿠폰은 오래전부터 소비자들 곁에 자리해 있었다.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쿠폰은 '코카콜라'에서 발행한 것이다. 1886년 코카콜라를 발명하고, 기업을 창립한 사람은 약제사 '존 펨버튼'이었다.그러나 코카콜라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사업가 '아사 캔들러'였다. 그는 1892년 펨버튼으로부터 코카콜라 브랜드와 사업권을 2천300달러에 사들였다. 그런 다음 무료 시음 쿠폰을 나눠주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에 힘입어 코카콜라는 1895년 미국 시카고,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등에 공장을 여럿 세울 정도로 성장했고 이후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음료 브랜드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이전까지는 '동네 사진관 1회 무료 가족촬영권'처럼 그저 푸근한 '사은'의 의미를 담은 쿠폰이 주류였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씀씀이에 압박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절약'하기 위해 서민들은 생필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각종 할인 쿠폰을 챙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전문적인 쿠폰업체도 함께 나타났다. 업소별로 따로 발행하던 쿠폰을 한데 모아 잡지 형태의 쿠폰북을 제작해 배포하거나 온라인에 쿠폰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나타난 것. '쿠폰족'도 생겨났다. 소비 계획에 맞춰 다양한 쿠폰을 들고 다니면서 최적의 소비를 하는 부류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미리 철두철미하게 온'오프라인 쿠폰을 챙겨가 '최대의 할인'을 누리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의 힘을 맛본 쿠폰은 최근 더욱 진화했다. '소셜커머스'가 뜨면서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매력적인 매개체로 선택된 것. 소셜커머스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전자상거래의 일종이다. 소비자가 특정 조건(공동구매, 제한 기간 내 구매 등)을 충족하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십 퍼센트의 파격적인 할인율로 구입 및 이용할 수 있는데 이를 증빙하는 쿠폰을 소비자가 내려받아 실제 해당 업소에 가서 사용하는 것이다. 소셜커머스의 원조 업체는 미국의 '그루폰'으로 설립 2년 만인 2010년 기업 가치가 60억달러로 평가될 정도로 급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소셜커머스 업체가 하나 둘 등장하며 5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이뤘고, 현재 20배 성장한 1조원 규모의 시장을 이루고 있다.

◆소비자 불만도 급증

전통적인 종이 쿠폰부터 소셜커머스의 '첨단' 쿠폰까지, 다양한 쿠폰이 현대인들의 소비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쿠폰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불만 사례도 잇따르더니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먼저 소셜커머스 쿠폰이 핵심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소셜커머스의 소비자 불만은 지난해 대비 200배나 증가했다. '반값'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많게는 90%까지 할인율을 책정하는 등 처음부터 과도한 마케팅으로 부담을 자초한 일부 업체들이 '짝퉁' 제품 판매나 허위 후기 작성 등의 '꼼수'를 부리며 소비자 피해를 폭증시켰다는 분석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쿠폰에 명시된 유효기간을 업체가 제멋대로 변경하거나 환불 조치를 피하는 등 일부 영세업체들의 '먹튀' 행위가 늘고 있다"며 "소셜커머스 쿠폰 시장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관련 피해 보상 규정이나 법규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소셜커머스 쿠폰 문제 이전에 종이 쿠폰에 대한 불만은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 소소하게 있어 왔다. 각종 외식 배달업소 쿠폰이 한 예다. 치킨 마니아인 직장인 이세현(33) 씨는 1년 전부터 여러 치킨 배달업소의 쿠폰을 모아왔다. 그러다 최근 황당한 일을 두 번이나 겪었다. 한 번은 쿠폰 10장을 모으면 치킨 한 마리를 준다던 업소가 최근 "무료 치킨 제공 조건이 쿠폰 15장으로 바뀌었다"고 한 것이다. 발행하는 쿠폰에도 제공 조건 관련 문구를 감쪽같이 바꿨다. 또 한 번은 늘 시켜먹던 치킨 배달업소가 폐업을 하고 인근 다른 업소가 영업권을 이어받았는데 기존 쿠폰에 대해서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한 것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측도 "가맹점의 재량에 달린 것이라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제공받을 수 있는 무료 치킨 가격을 계산해보면 쿠폰 장당 1천원가량의 가치를 지닌 셈인데 갑자기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쿠폰도 일종의 유가증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소비자는 쿠폰 마니아? 아니면 쿠폰의 노예?

좀 더 소소한 문제는 마구잡이로 발행되는 각종 종이 쿠폰이 지갑을 뚱뚱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쓸 쿠폰과 쓰지 않을 쿠폰에 대한 관리는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각종 광고에서도 외치듯 '할인받지 못한 자=못난이'로 인식되는 요즘 세상에서 쉽잖은 일이다. 직장인 곽모(29'여) 씨는 "카페, 미용실, 액세서리 전문점 등에서 주는 쿠폰은 모두 지갑 속에 넣어 둔다. 언젠가, 반드시, 조금이라도 할인 혜택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행여 버리거나 집에 놔두고 와서 '제값'을 지불해야 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찜찜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이달 5일 대구의 한 대학가와 동성로에서 20, 30대 젊은이 10명을 붙잡고 "지갑 속에 쿠폰이 몇 개나 있는지, 그중 안 쓰는 쿠폰은 몇 개인지"를 물어봤다. 대학생 장모(23'여) 씨는 "이용한 뒤 도장을 10번 받으면 커피 한 잔이 무료인 카페 쿠폰만 10개다. 지금 세어보니 안경점, 미용실 쿠폰 등을 포함해 모두 40개 정도다. 쓰지 않는 쿠폰은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특히 3년 전에 받아 놓고 꺼내보지도 않은 쿠폰을 덕분에(?) 방금 발견했다. 유효 기간이 지났으니 버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조사 대상자들은 최소 5개에서 20개 이상의 쿠폰을 갖고 있었고, 이 중 절반가량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쓸 일이 있을 경우를 위해 들고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 만연해지자 부산의 한 카페에서는 "쿠폰 공화국을 해체하자"며 "유효 기간이 지나거나 해당 업소가 폐업하는 등의 이유로 못 쓰게 된 일명 '수면 쿠폰'을 가져오면 무조건 10% 할인된 가격으로 커피를 제공한다"는 일종의 소비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광고비가 제품가격에 엄연히 포함되듯 쿠폰도 마찬가지다. 결국 쿠폰 발행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쿠폰 남발은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자 자원 낭비다"고 캠페인의 의미를 밝혔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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