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11월 11일

입력 2012-11-09 11:26:44

11월 11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빼빼로 데이란 말이 툭 튀어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날은 농민의 날이다.

평안북도 구성군이 고향이던 고 원홍기 씨는 6'25전쟁 때 월남해 강원도 원주에서 농사를 지었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가 지닌 철학이었다. 원 씨는 한자 10(十)과 1(一)을 합하면 흙 토(土)가 된다는 데 주목했다. 1964년 11월 11일 11시 가을걷이를 마치고 그는 처음으로 '농업인의 날'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흙의 진리를 탐구하며 흙을 벗 삼아 흙과 함께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농사 철학을 강조했다.

'농업인의 날'이 정부 지정 공식 기념일이 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줄곧 이날을 농민의 날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던 원 씨의 주장은 1996년에야 받아들여졌다. 이후 이날은 한 해 동안 힘들여 농사를 지은 농민들을 격려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날이 됐다.

아쉽게도 요즘 농민의 날은 간 곳 없다. 그 자리는 빼빼로 데이 몫이다. 올해도 대형 매장의 목 좋은 곳은 빼빼로 데이 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빼빼로 데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1996년 부산 지역 여중생들이 친구들 간에 서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빼빼로를 선물하기 시작했고 이를 롯데제과 측이 상업적인 문화로 연결한 것이 효시라는 설이 유력하다. 빼빼로 매출과 빼빼로 데이 문화 확산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롯데제과의 최근 3년간 빼빼로 매출액을 보면 2009년 640억 원, 2010년 750억 원, 2011년 870억 원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매년 11월 11일이 다가오면 대형 매장에 특수를 노린 코너가 설치되고 국적 불문, 출처 불문의 빼빼로 모양 과자가 넘쳐난다.

이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은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이었다. 2003년 빼빼로 데이에 맞설 사내 이벤트를 공모했다. 그 결과 '빼빼로' 대신 모양이 비슷한 가래떡을 먹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래떡 데이의 시작이다. 이후 농협이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이 아이디어를 받았다.

선거의 해, 농협이 어제 이날을 하나로 데이로 공지했다.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과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는 소비자에게 보답하는 날로 정해 기념행사도 갖겠다고 한다. 명칭이야 어떠하건 잊지 않을 것은 이날이 농민의 날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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