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네거티브와 단일화

입력 2012-11-07 11:32:31

대선 정국이 야권 단일화로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단일화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회동에 전격 나서면서부터다.

이제부터 대선의 초점은 야권 단일화에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층이든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든, 또는 대선에 관심이 없는 냉담층이든 '문'이냐 또는 '안'이냐에 관심이 고조되는 구조다. 물론 언론도 야권 두 후보의 입만 지켜보며 단일화 여부에 대한 경마식 보도에 매달려야 할 처지다.

얼마 전 삼성 라이온즈의 승리로 끝난 프로 야구를 보는 듯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플레이오프에 오른 두 후보 중 누가 결승전에 올라올 것인가를 기다리는 입장이고, 결승전이 열릴 때까지는 대선 무대에서 '조연' 취급을 받게 됐다.

이번 대선의 야권 단일화 과정은 10년 전인 2002년 대선과 흡사하다. 후보 등록 직전까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고 '이회창 대세론'을 넘기 위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통합 21' 정몽준 후보는 단일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두 후보는 이번 대선과 같이 단일화 수용 여부를 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고 11월 5일 단일화 테이블에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 후보는 10년 전과 같은 날, 문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 회동을 제안했다. 단일화 합의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노 후보를 줄곧 앞섰지만 노 후보는 역전극을 펼치며 단일 후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단일화의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 민주화 항쟁 결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노태우 민자당 후보에 맞서기 위해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거센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단일화는 실패했지만 당시 단일화 시도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나온 역사적 결과물이다.

하지만 10년 뒤인 1997년에는 김대중'김종필 후보가 DJP 연합을 하며 야당의 대선 승리라는 한국 정치사의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 냈다. 만약 2007년 대선에서도 안철수나 정몽준 후보같이 일정 세력을 가진 제3의 후보가 존재했다면 민주당은 단일화 카드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이제 '단일화'는 야권으로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됐다. 대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누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단일화 카드는 상당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정치'경제 개혁'이란 화두를 들고 등장한 안 후보는 변화를 바라는 서민과 젊은층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지지세가 민주당 지지표와 합쳐지면 대선은 '박빙'의 승부전이 될 것이다. 물론 누가 대선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승리의 셈법은 달라지겠지만 국민들은 '단일화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야합'이란 비난을 의식한 듯 야권은 단일화 논의가 예전과는 '본질'이 다르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DJP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이념적 성격이 다른 이들이 정권 창출을 위해 뭉쳤지만 이번은 '철학'과 '가치'의 단일화란 주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정책과 국정 운영 능력을 가진 '후보 검증'이란 대선의 중요 키워드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두 달간 여야는 과거사와 북방한계선(NLL), 부동산 탈세 의혹 등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방으로 시간을 보냈다. 또 앞으로 후보 등록일인 25일까지는 야권 단일화로 관심사가 옮겨갈 전망이다. 20여 일이 조금 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유권자들이 정책이나 인물을 비교 검증할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의 제한된 TV 토론이 고작이다. 접전이 예상되는 만큼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내 표'보다는 '네 표'를 깎기 위한 네거티브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선은 차기 정부의 정책 기조를 결정하고 이를 이끌어 갈 인물을 뽑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후보 등록일까지 누가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안갯속 대선 정치'가 이번 선거로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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