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김지하의 지지

입력 2012-11-07 11:33:04

1970년 5월호 '사상계'는 서점에서 전부 수거됐다. 시인 김지하의 풍자 담시 '오적'(五賊)이 실렸기 때문이었다.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다섯 부류가 사회적 지위를 악용하여 치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원흉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재벌에 대해서는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 잡고…라며 정경유착으로 검은 부를 쌓아가는 실상을 고발했고,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혁명공약 모자 쓰고 혁명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우매한 국민 저리 멀찍 비켜서랏/ 골프 좀 쳐야것다…면서 배지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국회의원의 꼬락서니를 들춰냈다.

'오적'을 읽은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분노했지만, 덮었다. 건드릴수록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오적이 나올 무렵 서울대 상대에서 발간하던 '상대평론'에는 서울의 신흥 부촌인 동빙고동의 호화 저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판자촌을 비교하는 사진이 실려 여론이 들끓었다.

동빙고동 부자촌은 수영장은 물론,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실내에서 폭포를 즐기는 아방궁이었고, 이웃한 판자촌은 풀빵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10리를 걸어다니는 어린 노동자가 있는 대조적인 현실이 부패한 다섯 지도자군(群)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는 여론이 일던 차에 터져 나온 오적은 국민 화병을 씻어주는 명약이었다.

사건은 당시 유진산이 당수를 맡고 있던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1970년 6월호에서 터졌다. 오적이 전재되면서 정치 문제로 비화,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발행인 부완혁은 구속됐다.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박정희와 악연을 지닌 1970년대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 김지하 시인이 최근 한 방송에서 "이 시기 민족과 세대, 남녀가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며 "엄마 육영수를 따라서 너그러운 여성 정치가의 길을 가겠다는 것에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김지하의 지지 발언은 박근혜 후보에게 천군만마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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