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맨에게 물 파는 한국인, 아프리카로 간 '봉이 김선달'
아프리카 남부 내륙국 보츠와나의 화폐단위는 풀라(PULA)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이 공식행사를 치를 때 부르는 만세삼창 역시 '풀라 풀라 풀라'다. 풀라는 이 나라 말인 츠와니어로 '비'를 뜻한다. 얼마나 가뭄에 시달리면 비가 돈이 되고, 신처럼 되었겠는가. 보츠와나는 남한의 6배가 넘을 정도로 넓은 땅덩어리지만 척박하고 건조해 인구는 2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경고! 코끼리떼 사고 다발지역
'칼라하리 사막 북부 변방에 봉이 김선달, 부시맨들에게 물을 팔아먹는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호기심에 좀이 쑤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 1천㎞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마지막 구간 300㎞를 남겨두고 나타난 마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흑인 청년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었다.
"원주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야 뭐 사자나 표범이겠지요."
주저없이 대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든다. 원주민들은 코끼리와 하마를 가장 두려워한단다.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CITES)에 의해 1989년부터 상아 거래가 금지된 후 아프리카 전역엔 코끼리떼가 엄청 불어났다.
특히 보츠와나 북부는 코끼리 밀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곳. 더구나 나타에서 '봉이 김선달'이 살고 있는 마운까지는 '코끼리떼 사고 다발지역'으로 작년엔 프랑스 여자가 밤길에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횡단하는 꼬끼리떼 앞에서 급정거했으나 놀란 꼬끼리떼에 차를 밟혀 압사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 서쪽 지평선은 벌겋게 물들고, 검푸른 동쪽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올라오고,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어둠살을 부른다. "에라 모르겠다. 이런 밤, 모텔 방에 누워 있으면 병이 나서 죽지." 흑인청년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운행을 강행했다. 코끼리떼를 만나면 라이트를 켠 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상책. 달밤에 집채 같은 코끼리떼를 여섯 번 만나고 야생 개떼와 하이에나를 수없이 만나며 마운까지 가니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튿날 '봉이 김선달'을 어렵잖게 만났다. 서진(徐辰) 씨. 그가 봉이 김선달과 너무나 다른 점은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 한몫 잡았지만 서 씨는 물을 팔아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는 것. 남루한 옷차림에 덥수룩한 염소수염, 2평이 될까 말까 한 침실, 열악한 생활환경, 현지인 아내, 그리고 두 남매. 그는 1992년 대우건설의 보츠와나 북부 도로건설 현장의 주방장으로 이곳에 처음 왔다. 그리고 주방 보조원으로 채용한 현지인 처녀와 눈이 맞아 불장난을 하다가 1993년 홀로 귀국한다.
◆아프리카에서 자유를 찾다
이듬해 그는 보츠와나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도로공사 중에 친하게 지냈던 윤 목수의 편지였다. 도로공사가 끝나고 모두 철수했지만 윤 목수는 보츠와나에 남아 인테리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편지는 서진 씨가 주방장으로 있을 때 불장난한 현지인 처녀가 떡두꺼비 같은 서진 씨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보츠와나에서 사업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마음 약한 서진 씨는 전 재산 280만원을 들고 보츠와나로 날아와 마운 변두리에 있는 처녀집을 찾아갔더니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떤가. 그는 그 처녀와 살림을 차리고 윤 목수와 인테리어 사업을 벌였지만, 사업이란 게 어디 뜻대로 되는 건가.
결국 윤 목수는 귀국해 버리고 서진 씨는 목수연장과 다 썩은 픽업트럭 한 대를 떠안고 보츠와나에 정착하게 되었다. 기가 막힐 일은 딸아이가 자랄수록 서진 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동남아시아인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대우의 도로공사 현장엔 필리핀 건설 노무자들이 우글거렸던 것이다. 남들이 쑤군거리든 말든 '도인 같은' 서진 씨는 자신의 딸이라 굳게 믿는다. 작년 말엔 아들을 낳아 요찬이라 이름 지었다.
그의 주업은 물장사다. 마운시내 공동수도에서 드럼통 2개에 물을 받아 픽업트럭에 싣고 흙먼지를 날리며 사바나를 달려 원주민들에게 판다. 한 드럼에 6풀라. 식빵 하나가 2풀라니 물값은 보잘것없다. 어떨 때는 고물 픽업트럭에 현지인들을 싣고 마운시내까지 태워주고 푼돈을 받기도 한다.
"살아갈 만합니까?" 하고 물으니, "좋습니다. 체면 차릴 일도 없고, 눈치볼 일도 없고 간섭받을 일도 없고…" 하며 씩 웃는다. 그렇다. 바로 그는 자유인이었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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