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충남 보령 은행마을

입력 2012-11-07 07:53:36

빈집엔 노란 가을이 내려앉고 은행나무 오솔길엔 황금카펫

가을은 하루하루 모습이 다르다. 그래서 가을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자주 든다. 요즘 같은 만추에는 더욱 그렇다. 눈 뜨고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하루하루가 소중해진다. 가을이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11월에 은행나무 잎이 켜켜이 쌓여 있는 충남 보령 은행마을에서 늦가을의 추억을 쌓아보자. 대구에서 승용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서야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은행마을에 도착했다. 이내 피곤이 몰려왔다. '너무 멀리 가을여행을 왔나' 하는 후회도 잠시,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인다. 노란 물감 한 통을 다 써도 모자랄 것 같다. 은행나무 잎들도 노랗고 추수를 끝낸 들판도 누렇다. 햇살과 바람마저도 황금빛이다. 마을과 인접한 오서산은 억새로 은빛 물결이다. 금빛과 은빛이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이다.

◆보령 은행마을=예쁜 벽화로 장식한 농가 앞에 서니 오랜만에 동심이 떠오른다. 은행나무 사이로 잘 익은 홍시 몇 개가 늦가을의 끝을 부여잡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으면 한두 개쯤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농가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강둑에는 은행알이, 길가에는 벼이삭이 널려 있어 햇살과 바람을 맞고 있다. 마을을 흐르는 작은 냇가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냇가 옆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고풍스러운 흙담이 보인다.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고택은 신경섭전통가옥. 1987년 충남문화재 291호로 지정됐다. 안과 바깥에는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가옥 기왓장마다 흩뿌려진 은행잎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 한식가옥으로 당시 부호의 사랑채로 전해진다. 사랑채 중간에 마루를 두어 대청으로 사용했고 목재의 결, 고색 단청이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다. 고택 마당에까지 황금빛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고즈넉한 가을 풍경이다.

온통 노란빛이라 쉽게 길을 잃었다. '어디를 가야 제대로 구경할까?' 추수를 하고 있는 농부에게 물으니 "보고 좋으면 되지, 그런 것은 뭐하려고 묻는지…." 우문현답이다.

신경섭전통가옥에서부터 구 장현초등학교까지 걸어서 20~30분 소요되는 꾸불꾸불한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황금빛 은행나무 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길게 펼쳐진 골드카펫을 걷는 것 같다. 은행나무 길 끝에는 마을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 옆에 있는 빈집 기와에 황금빛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 마을은 수령 100년이 넘는 토종 은행나무가 3천여 그루가 있는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로 충남의 자랑할 만한 관광자원으로 선정돼 올해 처음으로 '청라 은행단풍축제'가 열린 곳이다. 연간 100t 이상의 은행을 수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은행 생산지이기도 하다.

◆개화예술공원=은행마을에서 10분 정도 달리면 개화예술공원이 나온다. 규모가 놀랍다. 주변 부대시설을 포함해 18만1천800㎡(5만5천 평)에 달한다. 종합예술단지다. 공원 내에는 모산조형미술관과 바람공원, 육필시공원, 화인음악당, 그리고 허브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본관은 보령에서만 생산되는 진귀한 돌인 '오석'(烏石)으로 지어져 있고 공원 곳곳에는 조각상과 시비 등 1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아직도 조성 중이란다.

성주산에서 시작해 웅진천과 만나는 개천 위의 다리를 건너 허브랜드로 가는 너른 길엔 커다랗고 반듯한 돌에 시가 새겨져 있었다. 아는 시도 있고 모르는 시도 있다. 묵묵히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허브랜드는 여러 관엽식물들과 양서류 곤충류들도 함께 관찰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추운 바깥 날씨와 달리 허브로 가득한 하우스 안은 봄날처럼 포근하다. 철을 잊은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다.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 맑고 투명한 물, 알록달록한 비단잉어와 아기자기한 조형물. 늦가을 바깥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허브랜드의 가장 은밀한 곳에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브꽃정식과 비빔밥이 구수한 된장찌개와 함께 상에 올랐다.

허브랜드를 나와 모산미술관으로 향했다. 빨간 지붕의 미술관에 들어서니 겨울용 별장에 온 것처럼 아늑하다. 중앙 홀에는 벽난로가 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따뜻해진다. 묵직하지만 차분한 분위기의 소파도 분위기를 더한다. 2층으로 오르자 독특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창과 턱이 묘하게 생겼다. 세모도 아니고 마름모도 아닌 독특한 창을 통해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창밖으로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TIP]

*가는길=서대구IC나 북대구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금오분기점에서 대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타고 30여 분을 달리다 유성분기점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를 갈아탄 후 한참을 달리다 서공주IC에서 내린다. 칠갑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1시간여를 가다 보면 '은행나무마을' 표지판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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