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1467~1573년)를 종식시키고 통일국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당시 3대 세력 중 하나였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슨푸성에서 인질로 지냈다.
이 시절 도쿠가와는 임제사의 셋사이 선사한테서 학문을 배웠다. 셋사이는 승려이면서 학문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군대를 지휘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다. 셋사이는 어린 도쿠가와가 '책 글씨체 그대로' 천자문을 베껴 쓰는 것을 자주 칭찬했다. 그는 "지혜란 글씨체를 흉내 내듯이 좋은 것을 그냥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쿠가와는 평생 이 가르침에 충실했고, 뭐든 모범이 될 만한 것을 흉내 냈다. 전국시대 최고 책략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외교 전략을 베꼈고, 오다 노부나가의 야전 진지 구축을 흉내 냈고, 다케다 신겐의 전술과 군제, 장비, 복장을 따랐고, 통일의 승부전이었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진을 그대로 베꼈다. 덕분에 천재가 아니었고 용감하지도 않았지만 전국(戰國)을 종식하고 평화시대를 열었다.
전국시대 최고 맹장 오다 노부나가는 천재였다. 1560년 2만 5천 대군을 이끌고 교토로 진군하는 최강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습해 패퇴시켰고,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누구도 신용하지 않았던 조총을 들고, 누구나 신용했던 다케다 가문의 기마 부대를 섬멸했다. 오다 뒤에 권좌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천재였다. 그는 마술 같은 전략과 기동성으로 순식간에 전국을 장악하고, 일개 졸병에서 전국의 주인 간파쿠가 되었다.
오다나 도요토미가 용감하고 영민했다면 도쿠가와는 겁쟁이였다. 겁쟁이였기에 그는 실수가 적었다. 천재였던 오다와 도요토미가 자신들만의 독창성으로 전국시대를 돌파하고자 했다면 평범했던 도쿠가와는 선자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고 인내하며, 전국시대라는 살얼음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어떤 영역에서든 독창과 창의의 가치와 대가는 크다. 그래서 온 세상이 목을 맨다. 그러나 충분한 '흉내'가 전제되지 않은 독창과 창의는 대체로 위험하고 무의미하다. 독창성이 없는 사람은 대박을 잡기 힘드나, 실수해서 망하지도 않는다. 오다는 연속 대박을 터뜨렸으나 단 한 번의 실패(부하의 반란)로 망했고, 도쿠가와는 단 한 번의 대박도 없이 최종 승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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