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연경동 태봉산 보존 울타리·안내판 없고 석물 흉물스럽게 부서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하면서 광해군이 주목받고 있지만 대구 북구에 있는 광해군 태실(胎室)은 관할 구청이 위치조차 모른 채 방치하고 있다.
5일 오후 광해군 태실이 보관돼 있어 '태봉산'으로 불리는 대구 북구 연경동 태봉 입구. 산 입구에는 '연경동 태실'이라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날 기자가 달구벌 얼 찾는 모임 이정웅 대표와 함께 둘러본 곳 중 광해군 태실을 알리는 유일한 알림판이었다.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200m쯤 올라갔을 때 이 대표가 "이곳이 광해군 태실"이라며 손가락으로 돌 두 개를 가리켰다.
산기슭 한가운데 석물 조각 2개가 놓여 있었다. 중간에는 길이 2m, 폭 1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태실이 담긴 항아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구멍을 가리키며 "이곳이 태실을 담은 항아리를 묻었던 곳인 것 같은데 태 항아리는 도굴을 당한 것 같다"고 했다.
태실 터는 울타리나 안내판이 없어 일반인들이 태실이 묻혀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석물은 옆으로 누워 있었고, 거북이 문양의 석물은 반쯤 부서진 채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는 거북이 석물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건너편에도 두 동강 난 비석 2개와 파편 10여 개가 산 아래에서 뒹굴고 있었다. 땅에 반쯤 파묻혀 있던 비석 조각을 뒤집으니 '龍阿只氏胎室'(용아지씨태실)이라고 새긴 글자가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王子慶'(왕자경)이라고 새겨진 비석 조각이 있었다. 모양이 비슷한 두 파편을 연결한 후에야 왕자의 태실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졌던 하나의 비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망치로 쪼갠 듯한 다른 비석 조각에는 '萬曆'(만력)과 '一月O日建'(일월O일건)이라는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어 비석의 건립시기를 짐작하게 했다.
이 대표는 "광해군은 비록 폐위된 왕이지만 실리외교를 펼쳐 탁월한 외교력을 보이고 대동법, 양전 실시 등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면서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태실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데도 관할 구청인 북구청은 시 지정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다.
북구청은 광해군 태실의 정확한 위치와 도굴 시기도 모르고 있었으며, 북구청 향토문화재 홍보 게시판에는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대구 북구청 문화교육과 관계자는 "시 지정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예산이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황 파악 정도의 관리만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경북대 문경현 명예교수(사학과)는 "광해군 태실은 폐위된 왕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흩어진 유물을 수습해 한 곳에 모은 뒤 울타리를 만들고 안내판을 설치해 많은 사람들이 광해군 태실을 찾아와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키워드
태실=왕실이나 양반 상류층에서 아이 태를 태 항아리에 넣어 보관한 곳이다. 왕실은 태 기운이 국운과 관련된다고 여겨 돌로 태실을 만들어 산에 묻고 특별히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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