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대통령선거에 外政(외정)이 보이지 않는다

입력 2012-11-03 08:00:00

대통령 선거가 46일 남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마지막 세 번째 TV 토론은 외교에 관한 것이었다. 한 나라의 정치에서 그만큼 외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미국 같은 큰 나라는 외교가 필요 없다고 한다. 힘이 곧 외교이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정세를 주도했던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 정책이 단적인 예이다. 외교는 힘없는 나라에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으며,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욱 그렇다.

독일의 사학자 오토 힌체(Otto Hintze)는 외정은 내정의 연장이고, 외정은 다시 내정을 규정한다고 했다. 내정과 외정의 상호결정론(codetermination)이다. 2008년의 촛불 정국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정치의 보수화는 대미 관계를 강화시켰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과의 소고기 수입 협상이 이루어지고, 소고기 수입 결정은 국내 정치에 심각한 분열과 대미 정서 악화를 가져왔다. 대한민국 건국은 국제적 냉전의 산물이고, 6'25전쟁도 외부 요인이 크다. 1980, 90년대에 네 마리 용으로 불린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의 압축 성장도 중국 북한 등 적대 세력과의 경쟁에서 조성된 외부적 긴장이 사회적 동원을 용이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렇듯 외정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적어도 한국 정치의 반은 외정에 있다고 하겠다.

대통령 선거의 화두로 등장한 '국민 대통합'이나 '일자리 혁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과 분열은 북한과 미국을 둘러싼 외교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 일자리 혁명도 국제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복지, 경제 민주화, 균형발전 등 내정에만 몰두해 있고, 외정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진실게임의 형태로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고, 후보들은 남북 관계와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여 한국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우려 속에서 미국으로부터 계속적으로 동참을 압박받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해서도 후보자들은 반응이 없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영토 분쟁을 둘러싸고 동북아시아가 격랑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한마디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반면에 11월 초 전국대표대회에서 다음 지도자로 등장하는 시진핑, 올해 안에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총리가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등 중국과 일본의 차기 지도자들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외정은 중국 문제일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에서 보듯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다. 미국의 중국 견제용이든(중국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 어떻든 중국은 미국과 나란히 주요 2개국(G2)으로 떠올랐다.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이 대중국 및 북한 정책은 연동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대북 정책은 큰 흐름에서는 중국으로 수렴된다.

만약에 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 어업분쟁, 이어도 문제 등에서, 이번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서처럼,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경우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 취해야 할 선택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 전략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지만, 태평양 너머 있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만으론 중화적 패권 질서 속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스, 이탈리아의 반도국가가 유럽의 지중해시대를 주도했듯이, 한국이 이 지역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덧붙여 독도 문제와 일본의 우경화로 경직된 한일 관계도 풀어야 한다. 역사와 현실을 두고 냉온탕을 오가는 한일 관계의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대한 대통령 후보자들의 생각을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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