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사과 농사꾼, 철가방 보고 "유레카"

입력 2012-11-03 07:42:32

사과 '친환경 반사판' 개발한 청송 송홍덕·조은석 씨 부부

잘 익은 사과나무 옆에서 즐거워하는 송홍덕·조은선 씨 부부.
잘 익은 사과나무 옆에서 즐거워하는 송홍덕·조은선 씨 부부.

햇볕이 내리쬐던 올봄 어느 날, 사과밭에서 일하던 송홍덕(53) 씨의 눈에 반짝거리는 물체가 들어왔다. 짜장면을 배달하러 온 중국음식점 배달원의 은빛 철가방. 햇빛을 받아 빛나는 철가방을 본 순간, 송 씨는 자신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쳤다.

과일 빛깔을 제대로 낼 때 쓰이는 '반사필름'을 대체할 '반사판'의 아이디어를 얻는 순간이었다. 이날부터 송 씨는 밤낮없이 반사판 연구에 들어갔다. 무게와 재질, 두께를 다르게 하며 실험하기를 수차례. 결국 가로 50㎝, 세로 70㎝, 두께 0.6㎜에 함석판 재질로 된 반사판을 개발해냈다.

반사판은 과일의 색을 낼 때 사용한다. 사과는 햇빛이 잘 닿지 않는 부분은 붉은색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동안 사과 재배농가들은 과수를 심은 고랑마다 반사필름을 깔고 최소 두 명이 땅을 판 뒤 허리를 숙이고 필름을 땅에 고정시키는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반사판은 나무 아래 그냥 여러 장을 깔아두면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송 씨는 청송 등 4개 지방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에 반사필름과 반사판의 효과 비교실험을 의뢰해 둔 상태다. 청송군 농업기술센터는 현재 반사판 50장을 2m 높이의 사과나무 아래 배열해 실험하고 있다.

청송군 관계자는 "기존 반사필름과 비교하면 반사율이 80% 정도지만 반사판을 열흘 정도 일찍 설치하면 충분히 반사율을 만회할 수 있다"며 "크기와 단가가 개선되면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씨는 "반사판은 필름보다 10배 정도 비싸지만 반사필름은 수명이 1년 아래인 반면, 반사판은 7~10년은 너끈히 쓸 수 있다"며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춘다면 과수농가에 희소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사판을 개발한 송 씨와 부인 조은선(47) 씨는 전문 농업인이 아니라 올해로 귀농 4년차를 맞은 초보 농사꾼이다. 지난 2008년 송 씨 부부가 귀농을 결심한 데는 청송 꿀사과가 한몫을 했다.

"사과밭을 구경하다가 주인이 건네주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정말 달고 맛있더군요. 결국 그 맛이 우리 부부를 청송에 눌러앉게 만들었죠."

송 씨는 25년간 해 온 대구에서 잘나가던 지문인식 프로그램 사업을 미련없이 접고,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로 들어왔다.

"농사라고는 인터넷이나 책으로만 접했지 실제 현장은 전혀 몰랐어요. 그저 시골에서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를 설득했죠." "동네 사람들이 우리 밭은 땅심이 다돼서 석회비료를 뿌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20㎏짜리 석회 120포대를 일일이 바가지에 담아 온 밭에 뿌렸다가 후유증으로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어요."

회색 건물 속에 살던 그에게 농사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독성이 강한 석회를 뿌릴 때는 반드시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뿌려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첫해 사과밭 2천300㎡에서 수확한 사과는 150상자.

"수확한 사과를 본 이웃들이 사과주스 공장에나 팔아야 할 비품이라고 하더군요. 고심 끝에 지인들에게 연락해 팔긴 했지만 다음 해에도 팔아 달라고 내놓을 자신이 없었어요."

부부는 밤낮으로 사과밭에 머물며 공부를 했다. 이웃들에게 노하우도 듣고, 관련 서적도 탐독하며 사과의 품질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송 씨 부부는 고심 끝에 모든 작업을 기계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승용 예초기와 운반기, 사다리차 등 될 수 있는 한 품을 적게 들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송 씨는 "첫해 농사를 지어보니 수확보다 몸이 고되어 버티기가 힘들었다"며 "농사일 대부분을 기계화하면서 능률도 오르고 남는 시간에 사과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얻는 것이 많았다"고 했다.

고생 끝에 송씨 부부는 이듬해 사과 200상자를 수확했고, 3년째에는 300상자를 거둬들였다. 품질도 점점 좋아져 대부분 정품으로 판매할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송 씨 부부는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사과를 멋지게 포장해 프리미엄을 붙인 것.

송 씨는 25년 동안 제조업에 종사한 경험을 살려 머리를 싸매 라벨을 디자인하고 포장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반응은 즉각 돌아왔다. 예쁘게 포장한 사과는 그해 시세보다 두 배 이상 받았고 나중에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어 온라인 판매를 하려고 열어뒀던 홈페이지까지 닫았다. 반사판 개발은 기계화와 일손 줄이기를 향한 마지막 고비였던 셈이다.

송 씨는 농사일과 함께 '친환경 반사판' 연구도 계속 진행 중이다. 또 청송군 현서면 귀농인협회에 소속되어 새내기 귀농인들의 조력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은퇴 후 귀농을 꿈꿉니다. 이곳 현서면에도 귀농인이 300여 가구나 되죠. 하지만 최소한의 준비조차 하지 않은 채 꿈만 갖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귀농을 하려면 수도, 전기, 전화 등 생활 기반이 어떤지,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지 시간을 갖고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한 송 씨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글'사진 청송'전종훈기자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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