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택] 귀뚜라미 소리가 사람을 잡을지도-곽흥렬

입력 2012-10-31 07:51:17

저녁밥 짓는 굴뚝 연기가 낭만적인 풍경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를 풀어헤치며 허공으로 흩어지던 저녁연기는 아늑하고 정겨운 고향의 정취에 젖어들게 했었다. 이제 그 굴뚝 연기가,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에 우울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원유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시골에서는 너도나도 다투어 화목 보일러를 들여놓았다. 이게 얼마나 먹성이 하마 같은지 도무지 감당이 불감당이다. 장작이 아니라 아예 통나무째로 꿀꺽꿀꺽 삼키고도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 배가 고프다며 입을 벌린다. 그 덕분에 마을 뒷산의 무성한 나무들이 마구잡이로 베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수십 년 전, 땔감을 전적으로 나무에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 인해서 산이란 산은 온통 벌거숭이가 되어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동요의 한 구절이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던 때였다.

해마다 식목일이 되면 온 국민이 나서서 나무심기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애써 심고 보살핀 보람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숲이 짙어졌다. 그와 함께 연탄 아궁이와 기름 보일러로 난방 형태가 바뀐 것도 산을 푸르게 하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공들여 가꾸어 놓은 숲이 화목 보일러의 등장으로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예전엔 사람의 팔 힘으로 톱질이 이루어지다 보니 나무들의 저항도 만만찮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전기톱의 등장으로 아름드리나무가 맥없이 쓰러져 눕는 데도 채 일 분이 걸리지 않는다. 지금 야산은 수십 년생의 건장한 나무들이 톱날에 희생되어 이미 훤히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있다. 화목 보일러가 배고프다고 밥 달라며 귀뚤귀뚤 풀벌레 소리를 낼 때마다 애꿎은 나무들은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중국 북경에서 팔랑거린 나비의 날갯짓이 만 리 밖의 미국 뉴욕에 허리케인을 몰고 온다는 과학이론이다. 이를테면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엄청난 차이로 발전해 간다는 학설이다. 아직은 그나마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 늘어나다 보면 우리의 숲은 장차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는지….

숲이 사라진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화목 보일러에서 나는 귀뚜라미 소리가 숲을 파괴하고 마침내 사람까지 잡게 되지나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이런 불안감에 사로잡혀 신경 줄을 놓지 못하는 것은 한낱 나만의 공연한 걱정이려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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