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꼭 행복해야 할까

입력 2012-10-30 11:00:06

"행복은 철학의 지옥이며, 시의 무덤이다." (고은, '개념의 숲')

 "그러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서 고난의 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되지?"

 "그 고난에서 자신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선택한 거지!"

을씨년스레 깊어가는 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친구들 간에 오간 대화다. 지켜보는 이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둘은 격론을 벌였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며, 우리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한 친구는 단호하게 주장했다. 사랑을 해도, 돈을 벌어도, 도둑질을 해도, 심지어 행복과는 정반대의 불행을 택해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다른 어떤 가치를 추구해도 결국 행복을 위한 것이니, 행복이 최고라는 '행복지상주의'라 할 수 있겠다.

행복지상주의라는 말은 낯설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상식일 성싶다. 각종 마케팅에 곧잘 등장하며, 특정 도시를 행복도시라 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행복하세요"는 흔한 인사말이다. 모든 게 행복으로 통하는 듯하다.

상식은 자명한 것처럼 들리지만, 때로 시대적 편견인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편견은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행복지상주의는 어떨까?

먼저 독선적으로 보인다. 행복이 유일한 궁극적인 가치이며, 다른 가치는 수단으로만 인정한다. 재화뿐만 아니라 사랑, 우정, 정의, 도덕 등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며, 행복과는 상관없이 추구될 가능성은 배제된다. 여러 가치들이 나름대로 중요함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은 배척된다.

또한 행복지상주의는 운명론적인 냄새도 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결과적으로 행복을 위해 살 수밖에 없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불행의 길에 들어서도 행복의 길을 걷게 되니,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기가 망연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게 아니라, 행복이 우리에게 군림한다.

행복지상주의가 말하는 행복은 공허하게 들린다. 모든 행위가 다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엄청난 포괄성 속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행복인지를 제시하지 못하는 개념적 공허함이 깔려 있다. 도둑질을 해도, 사기를 쳐도, 살인을 저질러도 행복하기 위해서니, 이 블랙홀의 깊은 어둠 속에 모든 것이 행복의 이름으로 시도될 수 있다. 이렇게 행복을 뒤쫓는 사회에선 도덕적 해이가 걷잡을 수 없다.

이럼에도 행복지상주의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는 무엇 때문일까?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 주장한 철학자는 이따금 있었지만, 사회적 통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자본주의를 형성'성숙시킨 것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였다고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는 금욕주의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 행복을 향유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량소비사회의 도래와 함께 엄숙한 분위기는 걷히고 행복이 방끗 고개를 들었다. 상품보다 '수요'의 생산에 사활이 걸린 경제는 소비를 활성화하는 것을 넘어 창조해야 했다. 여기에 '당신의 행복을 위해'라는 달콤한 말이 참회의 무거운 분위기를 흩어 놓으면서 근검절약의 습관은 빗장이 풀려버렸다. 모든 것을 허용하는 행복은 수요창출의 무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운명처럼 엄습했다.

유사한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아껴 쓰고 모으는 생활이 자취를 감췄다. 소비는 굳건히 미덕으로 자리를 잡았고, 행복추구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 행복은 세 대선 후보의 입에 분주히 오르내린다. 선거캠프를 아예 '국민행복'이라 이름 붙인 후보도 있다.

하지만 행복이 모두에게 언제나 삶의 목적일 수 있을까? 행복이 나쁘다는 말도, 추구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관점에 따라 행복은 좋은 가치일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좋은 가치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우리가 어느 것을 추구할 것인지 사려 깊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지상주의 밑에서 우린, 칼 지브란의 말처럼, 행복하려는 갈망을 수갑처럼 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갈망이 실상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고백했을 때, "왜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재정/대구대 교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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