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노는 공터 배추·무∼ 잘도 큰다∼♪♬

입력 2012-10-30 10:03:53

북구 고성동 철로변 녹지 "노는땅 살리고 밥상 풍성"

"노는 땅도 살리고 배추값 걱정도 덜었어요." 철로변 옆 완충녹지용 부지가 배추밭으로 변신했다. 대구 북구 고성동 경부선 철로변 정비사업 지역에 인접한 부지.

"정부가 땅을 넓힌대요. 공사 다 끝날 때까지 땅을 놀리면 뭐해. 그러니까 주민들이 배추 심어 먹으려는 거지."

늦여름 땡볕을 참아가며 주민들은 텃밭을 갈았다고 했다. 철길 방음벽과 잇닿은 곳으로 곧 완충녹지가 될 곳이지만 자갈을 골라내고 돌덩이를 빼냈다. 철로 옆 부지였기에 말 그대로 맨땅이었다. 어른 주먹 크기의 돌덩이가 지천이었지만 팥죽땀을 흘려가며 골라냈다. 불과 지난달까지의 풍경이었다.

대구 북구 고성동 KTX 경부선 철로변 인근 주민들의 배추 농사가 '대풍'을 맞았다. 배추 소매가가 포기당 4천원선에 근접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와중이다. 29일 낮 찾아간 이곳은 '도심 속 배추밭'이 따로 없었다. 800m 가까이 이어진 방음벽을 따라 간간이 빈터가 보였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배추와 무 등 채소류가 자라고 있다.

주민들이 밭을 일군 부지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KTX 소음을 줄이기 위해 확보한 부지였다. 공단이 조경공사에 앞서 확보한 부지가 인근 주민들에게 텃밭이 된 셈이다. 밭을 일구는 주민들은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주민들에게 철로변 옆 여유 부지는 마을 공동 소유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나서서 땅을 나누지 않았다. 먼저 밭을 일군 사람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경작할 수 있을 만큼이면 충분했다. 1인당 10㎡ 안팎이었지만 제법 밭뙈기 모양이 나왔다. 작은 밭이었지만 20포기 정도가 들어차 있었다. 배추 속이 차도록 배추 묶기에 한창이던 한 주민은 "지난달 파종한 상추와 배추가 꽤 자랐다. 빨리 자란 상추는 벌써 요긴한 반찬으로 밥상에 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지난 여름 일군 도심 속 밭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조경공사가 시작되면 죄다 갈아엎힐 운명이다. 원래부터 이 땅은 한국철도시시설공단이 6천629억원을 투입, 완충녹지와 도로를 각각 폭 10m씩 만들기로 하고 확보한 곳이기 때문이다. 완충녹지 조성 조경공사는 2014년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해 주민들이 맨주먹으로 밭을 일구는 것은 불법 경작이다. 길어야 내년 이맘때엔 땅을 비워줘야 한다. 주민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 주민들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진행하고 있는 경부선 철로변 정비 공사를 개의치 않았다. 외려 노는 땅을 그냥 놔두는 것을 죄스럽게 여겼다.

한국철도시설공단도 알고는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공단 내 한 관계자는 "완충녹지대의 조경공사가 언제 시작될지 정확하진 않지만 인근 주민들이 텃밭을 만드는 것에 제동을 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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