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의 색깔있는 일본이야기] 지진의 기억과 방재 훈련

입력 2012-10-27 08:00:00

몇 년 전 대구의 계명대학교에 부임하기 위해 처음으로 부산공항에 내렸을 때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 기억이 있다. '한국에는 지진이 없다(?)'고 생각하니 크게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언제라도 지진이 있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얼마 전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나가는 대학에서 우연히 내 수업 시간에 지진 방재 대피 훈련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캠퍼스에서 피난 장소까지 신속하게 학생들을 대피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긴장을 했다. 긴급 지진 속보 발표와 함께 학생을 두더지처럼 책상 밑에 들어가게 했다. 잠시 후 흔들림이 가라앉은 것으로 가정하고, 대피 경로를 확인하면서 대피 장소로 지정된 운동장까지 냉정하고 신속하게 이동했다. 운동장에서는 지진에 의한 화재도 상정하여 학생과 교직원들의 소화 훈련도 실시하였다. 같은 시간, 바다 가까이에 있는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는 쓰나미를 상정한 훈련도 실시했다. 작년 동일본 대지진 후 쓰나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보육원에서 대학까지, 그리고 직장에서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방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뿐만 아니라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피 훈련이 몸에 배어 있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30년 전부터 항상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에는 학생들이 방재 머리띠(당시는 부모의 수제품)를 지참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 머리띠는 평상시에 의자의 방석 대신 사용되었으며, 수제품이기 때문에 색상과 무늬가 다양해서 교실을 화려하고 밝게 해주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대피 훈련은 매년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에 실시했다. 초등학교 때나 지금의 훈련이나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배운 바로는, 왼손으로 입을 막고 오른손은 왼쪽 팔꿈치를 받치는 것이었다. 왼손으로 입을 막는 것은 화재 등의 연기를 마시지 않고 떠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를 받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손으로 누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밀지 마, 떠들지 마, 침착해'라는 표어도 기억에 생생하다. 자기 혼자 먼저 도망가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매뉴얼대로 질서정연하게 대피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몸에 밴 대로 행동했다. 작년 동일본 대지진 때 전 세계인이 보고 놀란 일본인의 질서 의식과 침착성도 이러한 반복 훈련 때문일까.

매년 9월 1일은 방재의 날이다. 방재의 날은 1923년에 발생한 관동(동경) 대지진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1960년에 제정되었다. 관동 대지진은 동경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약 10만 명에서 14만 명이 사망했고, 3만 7천 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때 약 6천 명의 조선인도 억울하게 학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동 대지진은 아마 한국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과 분노의 날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는 방재 주간으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방재 의식을 계몽하고 전국적으로 방재 훈련도 실시한다. 몇 년 전 규슈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9월 1일이 방재의 날이라는 의식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지진에 대비한 방재 훈련도 거의 기억에 없다고 했다. 그 지방은 중부 지방이나 관동 지방보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규슈의 친구에게 방재 경험이 없다는 것은 관동 대지진의 기억이 도쿄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슈보다 가까운 나고야에서 자란 나에게도 관동 대지진은 영화나 소설, 역사책에서나 본 것이다. 최근 도쿄에 사는 친구가 지진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동경 지진에 대해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열도 어디에서나 지진의 공포를 벗어날 수 없지만,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 지진에 대한 기억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재지변을 피할 수가 없다면 그 대비만큼은 철저히 해야 한다.

미야자키 치호/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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