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 동서남북(상)

입력 2012-10-25 14:19:30

한국에 장르 음악 도입…프로그레시브 록 DNA 수용

대중음악을 감상 또는 소비하는데 꼭 장르를 구분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듣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구분하는 편이 좋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댄스, 발라드, 트로트, 록 정도가 전부였던 한국대중음악계에 세분화된 장르 개념이 등장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앨범부터다.

물론 이전에도 장르 지향적인 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이 장르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서태지 덕분이니 공이라면 공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르 개념은 인디 음악신이 태동하면서부터인데 비록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인디 음악신은 한국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수많은 음악 장르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이질적인 장르는 프로그레시브 록이다.

1960년대 후반 록의 예술적 승화를 고민하던 영국 아티스트들에 의해 태동한 프로그레시브 록은 핑크 플로이드, 예스, 킹 크림슨 같은 명그룹들을 등장시켰고 유럽으로 건너가 수많은 실험적 집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클래식적인 요소를 차용하기도 했고 음향, 조명 등의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개발된 무그사이저나 멜로트론 같은 신시사이저를 활용하는 데 대단히 능했다. 이런 실험적 집단군으로 인해 록은 예술적 승화를 이룰 수 있었고 197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한국대중음악계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장르이다. '015B'의 6집 앨범 'The Sixth Sense-Farewell To The World'나 신해철의 밴드 '넥스트'가 데뷔 앨범부터 프로그레시브 록을 표방한 앨범을 공개한 정도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니아들에 의해 1988년 등장한 밴드가 있는데 '동서남북'이다. 등장했다기보다는 발견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1981년 유일한 앨범을 공개하고 해체한 밴드가 뒤늦게 관심을 받고 앨범이 재발매되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이 새롭게 부각된 데에는 심야 FM라디오의 공이 다분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전도사를 자처했던 전영혁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앨범에 수록된 '나비'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영국과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에 심취해 있던 마니아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나비'는 영국과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고민했던 예술적 DNA를 모두 수용한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컬트 현상까지 낳았지만 정작 앨범은 구할 수 없었다. 마니아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놓칠세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들었고 좀 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크롬이나 메탈테이프를 적절히 활용했다.

하지만 앨범 커버 아트가 중시되는 프로그레시브 록 마니아들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고 앨범의 재발매를 음반사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두 통의 전화도 아니고 집단적인 요구가 시작되자 음반사는 자신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밴드의 마스터 테이프를 찾기 시작했고 1988년 '아주 오랜 기억과의 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재발매가 이루어진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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