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스크린쿼터의 추억

입력 2012-10-22 10:50:02

시계를 6년여 전으로 돌려보자. 2006년 1월 참여정부는 한국 영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해 그해 7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최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고, 스크린쿼터 일수를 절반으로 줄여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영화계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생각했다. 한미 FTA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영화인들이 연일 거리로 나섰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한 26일은 문화국치일이 됐다. 1993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후 단계적으로 스크린쿼터를 폐지하면서 연간 100여 편에 이르던 영화 제작 편수가 10편 이하로 줄어든 멕시코는 좋은 사례였다. 할리우드의 독과점 방지 장치를 풀어버린 한국 영화도 틀림없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지 6년여. 예상과는 달리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또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축포를 쏘았다. 지난 9월 13일 개봉 이래 38일 만이다. 7월 25일 개봉한 '도둑들'은 관객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한 해 '1천만 관객 돌파' 영화 두 편이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올해 극장가에 내걸린 우리 영화는 모두 111편이다. 이 중 23편이 관객 400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관객 400만 영화는 지난 2008년 14편에서 2010년 17편, 지난해 20편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08년 42.8%에 불과하던 한국 영화 점유율도 지난해 51.9%, 올해는 58.0%까지 높아졌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34.6%에 그쳤다. 올 들어 8천917만 명이 우리 영화를 찾았다. 이 추세면 한국 영화 사상 연간 관객 수 첫 1억 명 돌파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원로 영화인 신영균 씨는 최근 "스크린쿼터에 안주했더라면 한국 영화의 품질을 끌어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개방과 경쟁 체제가 오히려 약이 됐다"고 진단했다. 일부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 보호를 위해 할리우드 영화에 빗장을 걸어 잠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방과 경쟁의 결과 한국 영화는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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