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축제' 벌이는 味鄕 전주 27가지 비빔밥에 미식가 탄성
'전주비빔밥'은 한식 세계화의 대표 주자다. 국내에서도 전국 어디에서나 '전주비빔밥'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전라북도 전주는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미식가들이 찾아와 북적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9일부터 '전주비빔밥축제'가 전주 한옥촌을 중심으로 전주시내 일원에서 일제히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구촌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음식 한류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고 있는 전주비빔밥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김치, 불고기와 함께 외국인들이 꼽는 3대 한식 중의 하나인 전주비빔밥에서 향토음식의 산업화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가늠해 본다.
◆전주비빔밥 음식명인 김년임 할머니
전주비빔밥은 전주시내 식당뿐만 아니라 항공사 기내식이나 열차 안에서도 맛볼 수 있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 문을 연 한식당에서는 빠질 수 없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주지역 향토음식으로 전국화와 세계화를 이뤄 낸 배경에는 김년임 할머니가 있다. 올해 일흔네 살인데도 지금도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방에서 일한다. 전주비빔밥 자체가 인생이요, 인생 자체가 비빔밥인 할머니다.
전라북도 음식명인 1호, 전북무형문화재 39호, 전주비빔밥 기능보유자로서 전북 무형문화재 39호다.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대한민국 식품명인 39호, 전주시 음식명인 1호 등 숱한 명성에도 오직 비빔밥을 만드는 주방일에만 열심이다.
전주비빔밥 지정업소 1호인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가족회관은 김 할머니가 41년간 운영해 온 전주비빔밥 전문식당이다. 약 300석 규모의 큰 음식점인 이곳에 들어서면 주인보다 먼저 온통 표창장과 상장, 공로패, 감사패로 가득한 벽면이 손님을 맞는다. "아이구머니나. 지금 단체 손님 준비 때문에 큰일 났네요. 5시면 손님이 식당에 들이닥치는데…. 김행자 한식계장님한테 연락은 받았는데 너무 바빠서 준비를 못 했어요."
후다닥 주방에서 뛰쳐나와 일행을 맞는 김 할머니는 흰색 주방장 복장 그대로다. 행주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김 할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전주비빔밥 얘기를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오늘부터 모두 3가지 축제가 시작됐어요. 전주비빔밥축제, 한국관광음식축제, 한국발효음식축제가 동시에 열려요. 세 곳에서 나보고 다 오라고 하니…."
전주는 '유네스코 음식창의 도시'로서 우리나라 유일의 미향(味鄕)이다. 비빔밥 하나를 잘 해내서 얻은 명성이라고 한다. 이번 축제엔 어린이 비빔밥은 물론이고 당뇨환자를 위한 기능성 비빔밥, 들고 다니며 먹는 테이크아웃 비빔밥 등 모두 27가지나 되는 비빔밥을 선보인다고 자랑한다. 특히 찬물 한 컵만 부어주면 따끈따끈한 비빔밥이 되는 전주 우주비빔밥은 러시아가 인증한 우주식량이자 군 비상식량이고, 레저용으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관람객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한다. 김 할머니의 맛깔스러운 전주비빔밥 이야기는 전주시청 홍보담당자를 능가할 정도다.
◆세계에 없는 우리만의 음식재료
"전주비빔밥은 세계인들에게 인기가 더 대단한 거 같아요. 외국에서 행사를 해 보면 눈이 파란 외국인들이 앞다퉈 '원더풀'을 외치지요." 비빔밥도 비빔밥이지만 외국인들은 나물 재료에도 놀란다고 했다. 애호박, 미나리, 고사리, 녹두묵, 취나물, 고추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만이 가진 기막힌 음식재료라고 말했다.
전주비빔밥의 전통 스타일만을 고집하고 있는 김 할머니의 식당 메뉴는 전통형태인 유기비빔밥(1만2천원)과 육회를 가미한 돌솥비빔밥(1만5천원) 두 가지가 전부다. 요즘 외식산업의 트렌드인 '선택과 집중'인 셈. 이 집이 전국에서 유명한 이유가 오직 비빔밥에만 전념해 왔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3가지의 반찬이 나오는 백반정식도 맛볼 수 있지만 3일 전에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솜씨 좋은 김 할머니가 손님들의 열화 같은 요구에 못 이겨 곁들여 내는 반찬도 포장상품화했다. '아롱사태-김 장아찌'와 '청매실장아찌'를 전국 택배판매한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등 이른바 '한그릇 음식'으로 전국을 제패한 전주시는 지난 2006년부터 전주시장 명의로 '전주음식명인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족자 형태로 만든 이 인증서는 제대로 된 전주비빔밥을 하고,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는 식당, 쾌적한 식사 분위기를 연출한 식당 등에 걸어주고 있다. 전주시 행정 자체가 전주비빔밥에 집중돼 지역경기를 일으키고, 지역경제를 형성시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식당은요, 종업원이 잘해야 돼요. 그러니 주인은 종업원들을 최고의 고객으로 대해야 하지요. 그래야 손님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요." 41년 동안 손맛과 입소문으로만 장사를 해 온 김 할머니의 성공 비결은 '정직'과 '정성'이다.
◆전주비빔밥의 변신으로 세계화
1973년 창업해 전국에 30여 개소의 체인점을 이끌고 있는 전주비빔밥 프랜차이즈 고궁은 최근 '담'이라는 전주비빔밥 외식사업을 창업했다. 김년임 할머니는 전통 한 상 형식의 전주비빔밥을 하지만 이곳에선 코스요리를 겸해 전주비빔밥을 퓨전화해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1천320여㎡(400여 평)나 되는 식당 1층은 갤러리로 꾸몄다. 2, 3층만 식당으로 쓴다. 식당 내부 칸막이도 흰 문종이 박스 속에 등을 켜 조명이 은은하다. 나지막한 가야금과 아쟁 등 국악도 귀를 편안하게 한다. 창가를 돌담으로 꾸미고 고기와를 얹고 바닥엔 굵은 모래를 깔았다. 방석도 모두 무명으로 흰색이다. 맛 탐방단으로 참가한 회사원 권기완(29), 김은주(32) 씨가 내부 분위기에 먼저 탄성을 질렀다.
"뇌두를 떼고 그냥 생으로 먹으면 돼요. 식전 산삼의 쓴맛은 씀바귀처럼 입맛을 더욱 돋워 주지요."
복스럽게 생긴 종갓집 종부처럼 은은한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점장 남선미(40) 씨가 하는 음식 스토리텔링이다. 전주비빔밥이 나오기 전 먼저 산양삼이 밥상에 오른다. 삼 이파리와 이끼를 깔고 얹어놓은 산삼에 일행 모두가 놀랐다. 생뿌리를 씹으니 입맛이 살아나는 듯하다. 기막힌 발상이다. 그다음은 들깨죽이다. 채 썬 무와 같이 끓여 내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다. 양식의 에피타이저 역할인 듯. 입맛을 돋우고 위장을 다독인다. 와인소스로 버무린 표고버섯 탕수육과 황포묵 우엉무침, 감자전에다 쇠고기장육편채가 차례로 나온다. 푸르스름한 청포묵을 치자로 노랗게 물들인 황포묵이 이채롭다. 쇠고기장육편채에 장식으로 부각 형태의 연근이 바삭하다. 이후엔 떡갈비와 대하찜, 물김치가 나온다. '한 그릇'인 전주비빔밥과는 달리 산해진미다. 그렇지만 한정식 집처럼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설렁탕 집처럼 너무 간단하지도 않다. 부담 없는 상차림이다.
이 집 메뉴는 전주비빔밥과 돌솥비빔밥, 그리고 보리굴비 콩나물국밥 3가지다. 코스요리가 끝날 무렵 점장이 직접 들고나온 전주비빔밥은 옛날처럼 아예 비벼서 나왔다. 미리 비빈 밥을 한 번 더 볶아 줘 퓨전화하면 더욱 맛이 난다는 게 이유다.
비벼 볶아 낸 밥 위에 다시 콩나물과 애호박, 고사리, 표고버섯, 시금치를 얹고 놋그릇에 소담스럽게 담아 배와 김가루. 계란지단, 황포묵과 으깬 잣, 대추, 호두 밤을 고명으로 꾸몄다. 가운데엔 볶은 고추장으로 버무린 육회를 얹었다. 뜨거울 정도로 데워진 놋그릇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지 않는다. 따라나오는 콩나물 냉국이 참 시원하다. 파김치와 멸치볶음, 낙지젓갈 등 곁들인 반찬은 3가지. "이것도 한번 먹어 보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음식을 권하던 남 점장이 보리굴비를 손으로 찢어 접시에 놨다. 맨밥을 콩나물국에 적셔 한 숟가락을 뜨니 곁에 앉아있던 점장이 직접 손으로 보리굴비 한점을 꾹 눌러 얹어 준다. 갑자기 콩나물 국물이 더욱 맑아 보인다. 향토음식 산업화는 손맛에다 음식 스토리텔링, 손님에 대한 서비스가 성공의 기본 조건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d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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