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운 유독물 업체…수백m 옆에 학교·주택가

입력 2012-10-18 10:45:39

법규 없이 마구잡이 들어서…소량 취급업소 파악도 못해

16일 대구 서구 이현동 서대구공단. 한 공장 주변에 '유독물'이라고 적힌 운반 차량이 곳곳에 주차돼 있고 담장 내부 공장 마당에는 '과산화수소 35%', '질산 70%' 등 표지가 붙은 탱크로리가 보였다. 불화수소(불산) 제조업체인 이 공장에서는 기계와 내부 열기를 식히기 위한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반도체와 원단, 화학약품 공장에서 사용'제조한 세척제와 희석제 냄새가 났다. 공장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들은 최근 구미 불산 누출사고 탓인지 낯선 사람이 주변에 기웃거리기만 해도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공장 건물 옆 공원에는 이현동 일대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어린이도서관과 주택가가 있다. 한 주민은 "공단에 인접해 있지만 내 집 주변에 불산 취급 업체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서 "불산 외에도 위험물이 더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집 인근에 불산 제조업체 '버젓'

구미 불산 누출사고 여파가 숙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주택가와 가까운 곳에 마구잡이로 화학물질 취급업체가 들어서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있는 유독물 취급업체는 711곳이다. 제조'판매'운반'사용'보관 등 취급 유형과 취급량이 제각각인 이들 업체가 취급하는 유독물은 환경부 고시 유독물 647종 가운데 178종에 달한다.

이 중에는 위험성이 커서 사고 발생 때 큰 피해가 우려되는 사고대비물질 69종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히 1% 이상만 함유해도 사고 발생 가능성이나 피해 정도가 큰 사고대비물질 10종을 취급하는 업소도 100여 곳에 달했다.

대구의 경우 유독물 취급업체는 대부분 서구(160곳), 달서구(83곳), 북구(54곳), 달성군(28곳) 등 공단 지역에 있으며, 경북에는 구미(113곳)와 포항(80곳)을 중심으로 경산(22곳), 경주(26곳), 김천(25곳), 영천(23곳) 부근에 제조업체와 사용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에 따르면 등록된 유독물 취급업체는 대부분 공단에 입주해 있지만 서대구 공단이나 구미 불산 누출사고 지역처럼 반경 수백m 내에 주택가가 있는 곳도 많았다. 유독물이나 독성가스가 유출되거나 위험물이 폭발하면 직'간접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범위인 것이다.

실제 경북 경주에는 불화수소를 비롯해 피부를 녹이는 강한 산성 용액을 제조하는 공장이 마을과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고. 강산성'염기성 용액을 사용하는 군위군 한 알루미늄 공장은 반경 300m 안에 초등학교와 주택들이 인접해 있다.

유출 사고로 유명한 페놀이나 맹독성으로 알려진 시안화칼륨(청산가리) 등을 취급하는 업체들도 주택가 주변에 흩어져 있다.

◆주택가 인접해도 규제 못해

이처럼 유독물 취급 업체가 주택가와 인전합 곳에 들어선 이유는 관련 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유독물 취급업체가 등록할 때 주거지와 이격 거리를 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서 유독물을 취급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유독물 취급업체라고 해서 모두 등록을 하는 것도 아니다. 법에는 제조업체는 모두, 사용업체는 연간 120t 이상을 사용할 때, 운반업체는 한 번에 1t 이상의 유독물을 운반할 때에만 등록하도록 돼 있어 등록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업체는 현황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연간 120t 미만을 사용하는 소규모 업체는 취급량이나 업체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는 셈이다. 한 번에 1t 미만의 유독물을 연간 수백 번 운반하는 업체도 등록을 않고 영업을 할 수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 관계자는 "유독물 취급업체가 등록 관련 서류만 제출하면 등록을 받아주도록 돼 있다"면서 "유독물 취급업체의 위치가 알려지면 테러에 이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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