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당채 비껴선 평사리 들녘엔 노랗게 내려앉은 가을이…
경남 하동은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3년 전 '슬로시티'로 선정되기도 한 이곳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정신적인 풍요를 얻을 수 있다. 때마침 1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악양면 평사리공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어슬렁 캠핑 축제'가 열린다. 소설 '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진 최참판댁이 있는 이곳에서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토지문학제가 열리기도 했다. '어슬렁 캠핑 축제'에 미리 참가하기 위해 경남 하동으로 향했다.
하동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해진다. 하동IC에서 내려 최참판댁으로 가는 섬진강 대로의 운치는 절경이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와 노랗게 익은 벼, 반짝이는 섬진강 물줄기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평일이라 도로가 뻥 뚫렸는데도 불구하고 앞뒤로 운행하는 차량의 속도가 느려진다. '연애를 하거나 불륜 커플들의 차가 저속으로 운행한다더니 혹(?)' 하는 생각에 잠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에선 이런 생각이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지리산 끝자락을 비추고 있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오다 보면 저절로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3년 전 '슬로시티'로 선정된 이유를 알겠다.
◆최참판댁=정작 평사리에 도착하고 나니 최참판댁 가는 길은 그 명성만큼이나 높고 멀다. 입구에 들어서면 약한 경사의 오르막길이 나타나 뜻밖의 산행이 필요하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나타난다. 천천히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초가집 세간들, 서서방네(동물농장)에서 토끼와 닭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쁜 일상에 찌들었던 마음이 자연스레 무장해제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다보니 최참판댁에 이르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언덕 끝 굽어진 길을 돌아 들어가면 이윽고 긴 담벼락의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하인이 뛰어나올 것 같은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이 기와집에서 가장 운치 있는 별당채도 나온다.
행랑채를 지나 솟을대문을 열고 나가면 가슴이 탁 트이는 평사리 가을들판이 내려다보인다.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싸여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이 들판 한가운데는 '부부송'이라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있는 부부처럼 다정하게 서 있다.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저물 녘의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점점이 밝혀져 있는 가가호호의 불빛만큼 어릴 적 아름다운 기억들이 솟아난다.
◆평사리 문학관=최참판댁에서 뒷길로 난 길을 따라가면 '평사리 문학관'이 나온다. 대나무숲 사이를 뚫고 들어가면 '비밀의 문'이 열린다. 예쁘게 치장한 새색시의 모습이다. 박경리 선생의 생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토지'에 대한 모든 정보들을 볼 수 있다. 박경리의 인터뷰 영상과 '토지' 드라마나 책도 볼 수 있다. 문학관 입구에는 '박경리 토지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박경리의 작품 외에도 김동리의 '역마'를 비롯해 하동 관련 문학작품을 수집'전시'보존해 박경리, 이병주, 김동리 등 한국 문학사의 주요 문인들을 기념하고 평사리 지역 관련 작품 등을 소장'수집 정리하고자 2004년 개관했다.
실내로 들어가면 소설 '토지'와 작가 박경리에 대한 설명이 있고 드라마 '토지'의 장면들을 모아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해주는 영상이 있다. 또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 소개되었던 '토지'의 주요 장면들을 한지 공예로 만들어 전시해 놨다. '토지'를 읽는 수고를 덜어줘서 고맙다.
연중무휴로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그러나 최참판댁이 문을 여는 오후 9시까지 구경할 수 있다. 캐릭터로 분한 서희와 길상이 화장실을 안내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최참팍댁 아래에는 토지장터가 열린다. 옛날 주막집같이 생긴 음식점들이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을 재료로 한 재첩국(7천원)을 비롯해 국수(4천원), 막걸리(5천원) 등을 1만원대 미만으로 즐길 수 있다. 최참팍댁에서 내려가는 길목에는 예스런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있다. 램프나 고서적들이 시간을 되돌린다.
##가는 길=대구 성서IC에서 창원'광주 방면으로 방향을 잡아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올라 약 50분 달린 후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칠원분기점에서 부산'북창원'진주'함안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돌아 1시간쯤 간다. 하동톨게이트에서 내려 하동'남해 방면으로 가다 계천네거리에서 구례 쌍계사'하동 방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섬진강 대로를 따라 10분 정도 달리다 읍내삼거리에서 구례 쌍계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시 만나는 평사리삼거리에서 악양 방면으로 우회전 해서 또 10분 정도 달리면 최참판댁 주차장이 나타난다.
##Tip
'토지'와 박경리='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작가 박경리는 1927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6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일했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시작으로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했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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