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하동 섬진강 재첩국

입력 2012-10-13 08:00:00

거울같은 섬진강에 취하면 재첩국으로 해장하고 가이소∼

맛 탐방단으로 나선 권용숙(35
맛 탐방단으로 나선 권용숙(35'회사원) 씨가 섬진강 재첩국 두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뚝딱 해치우고 \'섬진강 재첩국 최고!\'라며 기념촬영에 포즈를 잡았다.
들깨가루와 검은깨가루, 단호박을 넣고 걸죽하게 끓여 업그레이드한 재첩수제비.
들깨가루와 검은깨가루, 단호박을 넣고 걸죽하게 끓여 업그레이드한 재첩수제비.
살짝 데쳐낸 향긋한 재첩 속살을 갖은 채소와 함께 숙회 형태로 초고추장에다 비비는 재첩무침회도 별미다.
살짝 데쳐낸 향긋한 재첩 속살을 갖은 채소와 함께 숙회 형태로 초고추장에다 비비는 재첩무침회도 별미다.
넉넉하게 재첩 속살을 넣고 들기름에 부쳐낸 재첩전은 그냥 먹어도, 술안주용으로도 그만이다.
넉넉하게 재첩 속살을 넣고 들기름에 부쳐낸 재첩전은 그냥 먹어도, 술안주용으로도 그만이다.

하동 재첩국집을 찾아가는 10월 초순. 깊어가는 가을이 하루가 다르게 느껴진다. 남해고속도로에서 하동 IC로 나와 하동읍내를 향하는 4차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왼쪽 차창 밖에서 머무는 듯 흘러가는 큰 강이 보이는 데, 바로 섬진강이다. 산란기를 맞은 은어 떼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노닐고, 강물을 굽어보는 남도 대나무 숲이 강변에 이어진 풍광이 이채롭다. 맨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은 멀리 거울같은 강 수면에 점점이 박혀있는 재첩잡이 아낙들. '춥지는 않을까' '물이 깊을 건데…'라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 목적지인 섬진강 강촌 재첩마을에 이른다. 벌써 하동은 벼 베기를 마친 논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오후인데도 살갗에 닿는 햇볕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입을 크게 벌린 석류와 일제히 다홍색을 띤 단감이 손님들을 맞는다.

◆섬진강 재첩은 지금이 제철

하동군청 석민아 공보계장이 일러 준 재첩특화마을은 하동읍내 진입 전 도로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섬진강 강변 자그마한 강촌마을. 하동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꾸며놓은 재첩국 전문식당은 모두 지붕이 둥글납작한 재첩 껍데기 모양이다. 모두 다섯 집 가운데 재첩잡이 강 어부가 직접 운영한다는 섬마을식당(하동읍 신기리 346)을 찾았다.

"어서 들어 오이소. 종일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인 조영주(43) 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석 계장이 미리 연락한 모양이다. 조 씨는 재첩잡이 어민이지만 종갓집 재첩국이라는 가공공장도 운영한다. 4, 5월쯤 봄철도 좋지만 섬진강 재첩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지금(9, 10월)이 제철이란다.

"가마솥에 푹 삶아서 국물을 우려낸 뒤 대소쿠리로 걸러내고 재첩 껍데기와 섞여 있는 건더기는 큰 함지에 담아 물을 붓고 쌀을 씻듯이 조리로 속살만 건져내지요."

건져 낸 속살을 재첩국물에 다시 넣고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 다음 부추를 송송 썰어 넣고 한소큼 더 끓여내면 그냥 재첩국이 된다.

"손님 기호에 따라 애호박을 채썰어 넣어 먹기도 하고 부추를 넣기도 합니다. 다진 청양고추를 조금 넣어 드시면 매콤한 맛도 별미죠."

차려 낸 상을 들여다 보며 먼저 눈요기부터 하느라 주인의 음식 스토리텔링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뽀얀 국물에 하얀 속살, 그리고 국물에 뿌려진 파란 부추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듯 한 국물은 파르스름 맑은 청포묵 빛깔이다.

"들여다 보고만 있으면 뭐합니까. 먹어 봐야 맛을 알지요."

주인의 채근에 재첩국물에 살짝 적신 밥 한 숟가락을 입안에 떠 넣었다. 단맛이다. 재첩 특유의 향과 부추가 어우러져 코를 자극한다. 야들야들한 속살은 혀에 감긴다고 표현해야 할까. 말 그대로 재첩국의 담백한 맛은 단박에 눈과 코, 혀를 동시에 포로로 만든다. 가히 환상적이다.

하동 재첩국은 식어도 맛이 그대로다. 국물이 맑아서 그런가. 걸쭉하게 끓이는 대구 고디탕은 식으면 비릿해지는데 재첩국은 괜찮은 게 신기하다. 수저질에 정신이 없는데 주인 조 씨가 재첩 수제비를 권한다. 재첩 속살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납작수제비 덩이가 식탐을 자극한다. 단호박과 부추, 들깨가루, 검은깨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 낸 재첩수제비는 재첩 고유의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이 집만의 보양식 메뉴라고. 곁들여 나오는 해초류 반찬 '까시리'무침도 별미다. 무청으로 담근 열무김치도 재첩국에 잘 어울린다. 부추 숙주나물과 쫄깃한 낙지젓갈, 고추장으로 졸인 멸치볶음이 짭짤하다.

◆하동읍내 식당은 전부 재첩국 전문점

스물 여덟에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 받았다는 조 씨. 부친과 조 씨의 재첩잡이는 무려 50년이나 된다. 식당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섬진강 기슭의 조그마한 강촌마을에 사는 조 씨는 강으로 나가 직접 재첩을 잡아 가마솥에 삶아내고 속살을 조리로 이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해낸다.

"재첩 국물은 갓 끓인 첫 물이 가장 맛있어요. 재첩 진액이라고도 하지요."

한 솥에 45㎏의 재첩을 넣고 삶아 낸다. 처음엔 찌듯이 물을 적게 넣고 끓이는데 이 때 우려낸 국물은 진한 우윳빛깔로 제대로 된 재첩의 천연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잘 삶아진 재첩국은 채 식기도 전에 영하 40℃에 냉동시킨다. 이렇게 해야만 다시 녹여 놔도 갓 끓여낸 것처럼 맛이 살아 있다고. 속살과 국물을 함께 얼린 재첩국은 500g들이 한 봉지에 4천원. 10개 이상 주문하면 택배비를 빼준다. 품질인증은 물론이고 여수엑스포 개최 기간 동안 공식지정업소 인증도 받았다.

조 씨의 종가집 재첩국은 서울과 대구 등 대도시 단골 고객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전국에 소문난 집. 조 씨는 올 봄에 정신과의사인 이시형 박사와 앵커출신인 박찬숙 국회의원이 들렀다가 그만 재첩국 맛에 반해 서울로 돌아간 뒤 입소문을 내준 덕분에 두 사람이 보낸 손님들이 단체로 찾아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동읍내엔 재첩국 식당이 250군데나 있어요. 한정식집이고 칼국수집이고 재첩국을 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짜장면 집에서도 섬진강 재첩을 쓰고 있지요."

봄, 가을 성수기엔 읍내 식당 전체가 나서도 손님맞이에 모자란다고.

이집 섬마을 식당에선 1인분 8천원짜리 재첩국 이외에도 생 김에 싸 먹는 재첩숙회(2만원), 부추와 파, 홍고추를 잘게 썰어 재첩과 붙여 낸 재첩전(1만원)과 재첩 수제비(1만원), 재첩 회덮밥(1만원)이 있다. 그리고 참게장 정식(1만2천원)과 모둠(재첩국 재첩회 참게장) 정식(1만5천원), 참게탕(3만원)도 맛볼 수 있다. 재첩국과 참게장은 연중 전국에 택배 판매 중이다.

◆강촌 아낙네들이 잡는 섬진강 재첩

섬진강 재첩잡이는 이렇게 한다. 재첩잡이 전통 도구인 '거랭이'라는 갈퀴로 물속 모래밭을 긁으면 재첩이 칼퀴에 걸려 나온다. 매년 이맘 때면 재첩 잡이에 나선 강촌마을 아낙네들이 섬진강 곳곳에서 온종일 이 고단한 거랭이질을 한다. 강물이 깊은 곳에서는 배를 이용해 형망이라는 그물을 끌어서 잡아내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강촌사람들의 노고로 재첩이 잡힌다. 갓 잡은 재첩은 빈 껍데기와 돌멩이가 섞여 있어서 뭍으로 나오면 먼저 이물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하동 군내 재첩잡이 가구 수는 약 800가구, 어민은 1천200명이나 된다. 생산량은 연간 30㎏들이로 10만여 자루를 생산하니 무려 300만㎏이다. 대부분 하동지역에서 생재첩 또는 가공재첩으로 소비된다. 30㎏들이 한자루가 7만, 8만원씩에 거래되니 연간 매출은 줄잡아서 80억원에 이른다.

"먹는 이가 더 먹는다고 재첩국은 여기 사람들이 더 먹지요. 옛날부터 간에 좋다고 해서 하동 사람들은 재첩국을 더 자주 먹습니다."

조 씨는 하동군이 올해부터 재첩을 이용한 건강 보조식품도 개발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중국산 재첩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게 아니었다. 상인들이 스스로 중국산 퇴치에 골몰하고 있다.

"보세요. 섬진강 재첩은 조개 특유의 윤택이 납니다. 껍질이 둥글납작하고 속살도 고유 향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요. 육질이 참 보드랍잖아요, 맛도 감미롭고…."

중국산은 빛깔이 없고 껍질이 우들투들 투박하며 속살도 역한 석유 냄새가 나고 별 맛이 없단다.

강촌사람 그대로, 여태 장사 때가 묻지 않은 조 씨의 꾸밈없는 재첩국 이야기는 섬진강 가을볕처럼 귀에 와 닿는다. '평소 썰물 때 드러나는 섬진강 모래사장을 볼 때마다 도시 사람들을 초청해 재첩잡이 체험장을 꾸며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줄곳 해왔다고. 그는 내년에 처음 열릴 예정인 하동 재첩 축제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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