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대표적 지식인들의 시대정신에 대한 인식과 삶
# 지식인의 사상과 삶을 시대정신과 지식인 관점서 조명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잃던 날, 선비 황현은 "나는 죽을 마음이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순국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절명시 네 편을 남긴 채 자결했다.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구나/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을 돌이켜보니/문자 안다는 사람 인간 되기 어렵구나".
황현이 남긴 절명시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 비장한 시의 '문자 안다는 사람'은 곧 지식인이다. 지식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이 시만큼 절실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 어떠한 시대를 살건 당대의 시대정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본분이라고 믿는 일을 주저함 없이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격변기를 사는 지식인들의 고민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김호기 교수의 '시대정신과 지식인'을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동시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 대표적 지식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사상과 삶을 소개한다.
원효와 최치원은 우리 고대사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원효는 한국 불교사상의 태두이며, 최치원은 한국 유학사상의 개척자다. 원효는 의천, 지눌, 휴정, 경허로 이어지는 우리 불교사상의 거목 가운데 거목이다. '금강삼매경론'을 비롯해 그의 저작들은 중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숱한 일화들은 역사의 한가운데를 당당히 걸어갔던 한 고대 지식인의 인간적인 삶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편 최치원은 문학과 철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신라 후기 최고의 학자로, 일찍이 당나라에 유학해 문명을 떨쳤을 뿐 아니라 신라에 돌아와서 사회개혁을 모색했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사산비명'을 필두로 그가 남긴 저작들은 전환기를 살아간 지식인의 고뇌와 운명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라가 통일신라로 나아가는 시기에 활동한 원효 사상의 핵심은 사회통합을 위한 통불교이다. 통일신라가 고려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던 최치원은 전환기의 사회개혁, 불교와 유학의 통합이 그의 사상적·실천적 활동의 핵심을 이뤘다. 동일성을 인정하면서도 차이를 승인하려는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의 원리가 원효가 말한 화쟁의 철학이다. 바로 이 화쟁 사상이 삼국통일 시기에 군사적'정치적 수준을 넘어선 문화적'의식적 통일에서 하나의 중대한 시대정신을 이루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최치원의 사상은 유교를 기반으로 하되, 불교와 전통사상을 통합하려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적 영역에서의 유교와 사적 영역에서의 불교와 전통사상을 생산적으로 결합하고자 했던 것이 최치원이 추구한 시대정신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고려 말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정치가로 유교 사회의 기초를 세운 이들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학문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노선을 함께했지만, 조선의 개국을 놓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유교와 의리 문화의 상징인 정몽주가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면, 정도전은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세웠다. 결과보다는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정치적 결정을 한 정몽주는 막스 베버에 따르자면 책임윤리보다는 신념윤리에 기반을 둔 선택을 한 것이다.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 이어 조선왕조의 2인자였다. 그는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병권을 장악하며 궁궐과 도성문의 이름을 짓는 등 '조선의 설계자'였다.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정도전은 재상을 중심으로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 관료 지배 체제를 기반으로 하되, 그 통치권이 백성의 삶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민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방원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면서 온당한 정치적 평가를 받지 못하였지만, 정도전은 정몽주와 달리 책임윤리에 철저한 지식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외에도 저자는 김부식과 일연, 이건창과 서재필, 최제우와 경허, 박정희와 노무현까지 동시대를 살다간 지식인들의 다양한 사상과 삶을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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