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국가와 정부의 대처 능력을 시험한다. 소련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제기한 통치 자격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붕괴했다. 체르노빌 사태로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시작됐고 이후 고르바초프 자신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최초의 공산주의 실험은 막을 내렸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 소련의 비효율과 무능, 무사안일과 비밀주의, 도덕의 와해가 응축되어 나타난 참사였다. 이 원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소련 지도부는 알고 있었다. 국가보안위원회(KGB)는 1982년과 1984년 두 차례나 3호기와 폭발한 4호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기밀로 봉인됐고 아무런 개선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폭발 이후 지도부의 대응은 더욱 무능했고 부도덕했다. 지도부의 첫 번째 조치는 보안 유지였다.(사고 당시 체르노빌과 같은 형태의 설비가 전국에 14곳이나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초보적인 사고 수습 매뉴얼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 국가들의 진상 공개 요구가 빗발치자 마지못해 내놓은 조치라는 것이 달랑 두 문장짜리 성명이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결코 위험하지 않다." 이것으로 미국과 함께 2대 슈퍼파워라는 소련이 얼마나 허약한 국가인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사고 수습을 위해 외국의 지원과 전문가를 요청하는 것으로 소련 지도부는 무능을 자인했다.
2006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연방정부나 미국의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대형 허리케인이 몇 년 내 엄습할 것이란 경고는 무시됐고 시 당국은 카트리나가 거의 들이닥쳐서야 주민 소개령을 내려 인명 피해를 키웠다. 구호품이 카트리나 상륙 5일이 지나서야 전달될 정도로 사후 수습도 엉망이었다.
구미 불산 누출 사건 역시 한국도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고 후 열흘이 넘도록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공포에 질린 주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물어도 아무 대답도 내놓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은 정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우리는 2003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고 수습 과정에서 '매뉴얼 일본'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허접스러움을 안주 삼아 얘기했다. 그러나 불산 누출 사건은 한국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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