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국'으로 범인 잡는다…대구경찰청 혈흔분석 도입

입력 2012-10-10 10:56:31

성범죄 등 강력사건 해결…범행현장 과학수사 앞장

지난해 5월 대구 중구의 한 주택가에서 목에 피를 흘린 채 숨진 50대 남성이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가위가 있었다. 신고자는 사망자가 세들어 살던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은 사망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혈흔(血痕)을 분석한 결과 자살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골목길 벽에 묻은 핏자국이 5m나 이어져 있는 등 주로 한 곳에 핏자국이 모여 있는 자살 혈흔과는 달랐던 것. 사망자 팔이 닿지 않는 맞은편 문기둥에서 피묻은 흉기를 휘두른 흔적도 발견했다. 결국 범인은 신고자인 집주인으로 밝혀졌다.

2009년 2월 대구 수성구 한 모텔 지하주차장에서 시신 일부가 비닐에 싸인 채 발견됐다. 시신 일부만으로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며칠 동안 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은 모텔과 인접한 빌라 담벼락에서 한 방울의 혈흔을 발견했다. 경찰은 빌라에 살던 사람 중에서 용의자를 찾아낸 데 이어 담벼락에서 발견한 혈흔의 주인을 밝혀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최근 성범죄 등 강력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찰 수사에서 '혈흔 형태 분석'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혈흔은 과학수사 중 가장 중요한 현장 증거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혈흔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형태가 모두 다르다.

피는 중력의 작용을 받기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흉기에서 튀어오르면서 독특한 자국을 남긴다. 혈흔을 분석하면 범행 도구를 알아낼 수 있다. 흉기를 휘두르면 폭이 좁은 타원형의 혈흔이, 둔기는 둥근 원 형태의 흔적이 남는다. 범행 도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면 남은 핏자국만으로도 어떤 도구인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흉기나 둔기로 인한 살인이 많아 혈흔의 변수가 다양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혈흔 형태 분석이 꼭 필요하다. 혈흔으로 범인의 움직임과 피해자와의 관계, 위증 식별 등 '범죄의 재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혈흔 형태 분석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단계는 아니다. 대구경찰청과 경찰 수사연수원에 혈흔 형태 실험실이 있을 뿐이다.

대구경찰청은 지난 2008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혈흔형태 분석기법'을 도입한 데 이어 2009년에는 혈흔 여부를 구분하는 시약인 '구아이악'을 자체 개발했다.

하지만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직원들은 혈흔 실험을 위한 혈액 구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사람의 혈액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 피는 감염 우려가 있다. 혈흔 실험을 할 때마다 경찰관이 직접 자신의 혈액을 뽑아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구경찰청 김기정 과학수사계장은 "대구한의대와 함께 인체 혈액과 유사한 모조 혈흔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빈발하고 있는 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혈흔 분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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