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교대로 입원 "희망만은 놓고 싶지 않아"
이철신(52'대구 중구 남산2동) 씨 부부의 집은 10㎡ 남짓한 사무실의 한구석이다.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살던 집이 은행에 경매로 넘어가 버리고 부부에게 유일하게 남은 사무실 공간에 살림살이를 갖다놓고 산 지 벌써 2년이다. 말이 집이지 사무실 한쪽에 야외용 비닐 돗자리를 깔고 자는 정도다.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깔고 잔다. 이 씨는 "아내와 교대로 병원에 입원하다 보니 사실 집에서 자는 시간은 많지 않다"고 했다.
◆불행과 고통의 쓰나미가 몰려오다
이 씨는 한때 잘나가던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었다. 25년 노하우를 가진 베테랑으로, 지역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한 달에 발코니 확장 공사만 300가구를 할 정도였다. 아내 고명숙(51) 씨와 함께 2남 1녀를 키우면서 오순도순 행복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시련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첫 시련은 7년 전 아내가 유방암 4기에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내의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한 종합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생이 1년 정도 남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유방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까지 들으니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차마 아내에게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이 씨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 병원에서 "임상 시험을 앞두고 있는 신약이 있는데 써 볼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했고, 이 씨 부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1년밖에 못 살 거라던 고 씨는 3년이 넘는 치료기간 동안 44번의 항암치료를 거쳐 지금까지 삶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씨가 아내 고 씨의 병 치료에 신경 쓰는 동안 이 씨의 사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건설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공사대금 융통이 잘 되지 않았고 결국 5년 전 부도를 맞았다. 25년 동안 벌어놓았던 재산은 한순간에 날아갔고 집은 은행 경매에 넘어가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이 씨 부부는 경산의 지인 집에서 더부살이하다가 2년 전 지금의 사무실로 옮겨 생활을 시작했다.
고 씨와 남편 이 씨의 지루한 암 투병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임상 시험 신약 때문에 피검사와 신약 주사를 맞기 위해 매주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그것도 아내 고 씨가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던 탓에 매주 차를 몰고 서울을 오가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씨마저 병마에 쓰러지다
부도 상황도 주변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정리되고 눈물겨운 병간호로 아내의 생명도 연장되면서 재기를 노리던 이 씨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속이 안 좋아 찾았던 동네 병원에서 "어서 큰 병원에 가 보라"는 소리를 들은 이 씨는 그 길로 한 대학병원을 찾았고, '대장암 4기에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항암치료라는 게 실제 받아보니 참으로 고통스럽더군요. 그래도 항암치료 15회차까지는 버틸 만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 대상포진까지 앓으면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항암치료 때문에 이 씨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한때 120㎏의 거구였던 이 씨의 몸무게는 68㎏까지 떨어졌다. 항암치료로 인한 면역력 약화는 대상포진에 결핵과 당뇨라는 합병증도 안겼다. 항암치료 15회차까지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었지만 대상포진을 앓은 뒤에는 이마저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 씨는 항암치료를 위해 3주에 한 번씩 병원에 5일간 입원했고 아내 고 씨도 비슷한 간격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반복되는 병원 생활과 사업체의 부도로 가계는 '파탄'이 났다. 부도로 인한 빚과 병원비, 그리고 필수 생활비를 카드를 통해 해결한 탓에 카드 값을 막지 못한 이 씨는 개인회생을, 아내 고 씨는 개인파산을 신청한 상태다. 이 씨 부부는 올해 9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씨는 "동사무소 직원들이 우리 부부가 사는 사무실을 둘러보고는 '지난해에 왜 신청하지 않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옥 같지만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는 아직 이 씨의 어머니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자식 된 도리로 부모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보다 더 아픈 아내를 혼자 둘 수 없고, 마지막으로 아직 학생인 세 자녀도 눈에 밟힌다. 이 씨는 "사람은 언젠가는 죽으니 죽음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떠나기 전에 해 두고 갈 일이 많다"고 삶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세 자녀는 엄마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것도, 가계가 크게 어렵다는 사실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 씨가 유방암을 앓고 있을 때도 고 씨는 아이들 앞에서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씨도 아프지만 자녀들 앞에서는 함부로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사실도 세 자녀가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급식카드를 받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이 씨는 "아이들이 아직 학생(중'고교생)이어서 자기 앞가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기 때문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로 얘기해줄 수 없었다"며 "부모 보살핌이 필요할 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 씨 부부는 천주교 신자다. 그런데 부부가 같이 세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 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하느님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처음엔 우리 부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치료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시련을 주신 하느님이 치유와 축복도 주실 것으로 믿으며 오늘도 힘을 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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