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산업, 말이 달린다] ① 말산업 1번지 영천

입력 2012-10-06 07:08:00

경마공원·승마장·조련장 등 인프라 탄탄…'포스트 골프'산업 육성 박차

영천 임고면 운주산승마장은 삼림욕과 승마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도시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민병곤기자
영천 임고면 운주산승마장은 삼림욕과 승마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도시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민병곤기자
영천 신녕면 매양리 옛 장수역 터에 복원된 관가샘.
영천 신녕면 매양리 옛 장수역 터에 복원된 관가샘.
영천 운주산승마장의 한라마들이 올해 태어난 망아지 3마리와 함께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영천 운주산승마장의 한라마들이 올해 태어난 망아지 3마리와 함께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유소년승마단의 영천중앙초교생들이 말을 몰고 운주산실내승마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소년승마단의 영천중앙초교생들이 말을 몰고 운주산실내승마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말(馬)이 '포스트 골프' 산업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말은 다른 가축과 달리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람과 교감하며 경마, 승마, 재활승마, 관광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말산업은 환경오염을 거의 유발하지 않아 녹색산업으로 불린다. 말산업은 축산과 레저가 결합된 복합산업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시대 농어촌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도 세계 최초로 '말산업육성법'이라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지난해 9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올해 7월 정부의 '말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이 발표된 뒤 지방자치단체들도 말산업특구 유치경쟁에 나섰다.

정부는 현재 경마 위주의 말산업을 승마인구 확대, 승마시설 확충, 승용'비육마 생산, 전문인력 양성, 말산업 특구 지정 등을 통해 농어촌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국내 말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의 인프라 조성 열기는 벌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승마 마니아뿐만 아니라 학생, 주부, 공무원 등 다양한 계층에서 말타기를 즐기고 있다. 제4경마공원을 조성 중인 경북도와 영천시를 중심으로 말산업의 현주소와 육성 전략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승마장 5곳에 경마공원까지 조성

제4경마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영천이 말산업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영천에는 2009년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운주산승마장이 개장돼 도시 브랜드 가치 제고 및 관광객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영천 임고면 운주산 자락 73㏊에 휴양림과 승마장이 조성돼 색다른 휴양공간을 제공한다. 삼림욕과 승마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도시인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연간 도시인 6만여 명이 승마체험 및 관광을 위해 영천 운주산승마장을 찾는다. 승마장을 조성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발길도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포항, 장흥 등 전국 35개 지자체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운주산승마장을 방문했다.

2009년 4월 운주산승마장 개장은 같은 해 12월 경마공원 유치로 이어졌다. 2016년 12월 영천경마공원이 완공될 경우 영천은 경마와 승마 및 연관산업을 함께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영천에는 공공 승마장인 운주산승마장 외에 '휘명승마아카데미' '삼밭골 농장' '영천승마클럽' '홀스승마장' 등 민간 승마장 4곳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청통에 민간 말 조련장도 들어섰다.

공공'민간 승마장 5곳을 갖춘 영천의 경우 말산업 육성과 관련, 탄탄한 인프라를 이미 마련한 셈이다.

◆초교생부터 아줌마까지 승마 '붐'

영천시민들의 승마 열기도 뜨겁다.

영천시는 승마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지난해 6월 전국 최대 규모의 시민승마단을 창단했다. 영천시민승마단은 유소년 12명, 줌마렐라(아줌마) 15명, 공무원 35명, 경찰관 12명, 육군3사관학교 생도 10명, 성덕대 학생 30명 등 114명으로 구성됐다.

요즘도 시민승마단원들은 매주 1, 2회씩 운주산승마장을 찾는다.

영천중앙초등학교 4, 5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유소년 승마단은 평보와 속보는 물론 구보까지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초등학생들은 일반 승용마보다 작은 한라마를 이용하며 직접 말에 안장을 얹어 실내승마장으로 몰고 나온다.

영천중앙초교 5학년 이채영 양은 "처음에는 말타기가 겁났지만 이제는 속보뿐 아니라 구보도 자신 있다"며 "승마를 시작한 뒤 집중력이 향상돼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영천시청 공무원 및 영천경찰서 경찰관들도 근무를 마친 뒤 저녁 시간을 이용해 말을 타고 있다.

김현식 영천시공무원승마단장은 "승마를 시작한 이후로 뱃살이 빠지고 허리가 튼튼해졌다"며 "살아있는 동물을 타고 가고 싶은 곳으로 달리다 보면 일로 쌓인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진다"고 자랑했다.

경북도 인재양성 공모사업에 선정된 임고중학교 학생 30명도 이론 교육을 받은 뒤 운주산승마장에서 승마 실습을 하고 있다.

'영천' '별빛' '홀스' 등 승마 동호인클럽 회원 60여 명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축사 한쪽에 마방을 마련한 뒤 말을 직접 사육하며 외승이나 해변 승마를 즐기고 있다. 축산농가의 말 사육은 향후 말산업 육성 방안 중 하나인 비육마 생산의 기반이 될 전망이다.

◆승마공원 및 비육마 생산'유통 기반 조성

영천시는 말산업 인프라 확충 및 승마 대중화를 위해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에 승마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운주산승마장 주변에 몽골 게르촌, 마상마술 공연장, 말 조각공원, 포니 승마장, 생태연못, 미니동물원, 농산물판매장 등을 갖춘 휴식공간을 건설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정희 영천시 축산담당은 "승마공원을 조성할 경우 관광객의 방문이 늘어 승마산업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한몫할 것 같다"며 "말산업 특구 지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또 운주산승마장 일원에 비육마 유통센터를 건립해 말산업 발전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비육마 육성 목장, 마사, 말 경매장, 말고기 가공'유통센터 등을 조성해 축산농가의 소득 창출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국내에는 아직 비육마 전문 생산 및 관련 기술이 없어 혈통개량을 통한 고품질 말고기 유통 활성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장기적으로 한국형 비육마의 생산 및 수출체계를 갖춰 말산업의 경쟁력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일 방침이다.

◆영천, 왜 '말의 고장'인가?

영천시 신녕면 매양리 신녕중학교 왼쪽 마을에는 조선시대 지방역원의 중심인 장수역(長水驛)의 관가샘이 복원돼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역의 운영 및 관리를 맡았던 찰방(종 6품)을 의미하는 '찰방길'로 이름 붙였다. 영천시내∼신녕 간 옛국도 28호선을 '장수로'로 명명했다.

역은 말과 역졸을 두고 국가 행정명령의 전달, 공물 운송, 관원과 사신 영송 등의 기능을 담당했다.

장수역은 고려시대 중기 이후 22역도 체제의 경주, 울진, 개성을 잇는 경주도(慶州道)에서도 이미 설치돼 있었다.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는 당시 장수역에 머물며 '흰 구름은 푸른 산에 있는데/ 나그네는 고국을 떠나네/ 해 저물어 눈과 서리 찬데/ 어찌하여 먼 길을 가는가/ 역 정자에서 밤중에 일어나니/ 닭 우는 소리 크게 들리네/ 내일 아침 앞길 떠나면/ 유연한 회포 금치 못하리/ 친구들은 이미 날로 멀어지니/ 머리를 돌리면 눈물만 흐르네'라고 읊었다.

포은이 41세 때인 1377년 3월 귀양지 언양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뒤 9월 일본으로 사행을 떠나 도중에 고향의 장수역에 들러 지은 시로 보인다. 다시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감정이 물씬 배어 있다. 포은 정몽주의 장수역에 관한 시로 볼 때 고려 말에 장수역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 신녕현이 장수역 인근으로 이전했을 때에는 역승(驛丞'종9품) 체제로 장수도(長水道) 17개 역을 거느렸다. 조선 세조 3년(1457년)에는 현재 문경지방의 유곡도(幽谷道) 제역(諸驛)까지 장수도에서 흡수해 찰방(察訪) 체제로 운영됐다.

세조 8년(1462년)에 영일, 송라, 흥해 등 기존 동서축의 일부 역을 송라도(松羅道)에 넘겨주고 신녕 중심의 남북체계(군위∼울산) 간선도로로 정비됐다. 장수역 찰방이 영천 청통'청경, 경주 아화'모량'사리'의곡'구어'인비'경역'조역, 경산 압량, 하양 화양, 의흥 우곡, 울산 부평 등 14개 속역을 관할했다.

조선 영조 때 장수역에는 역리 200명, 역노 170명, 역비 86명 등 456명이 소속됐으며 14개 속역까지 포함하면 역리 348명, 역노비 457명 등 805명에 달한다.

조선 고종 때 장수도 본역과 속역의 역마는 대마 13두, 중마 29두, 소마 95두 등 137두에 이른다. 역마의 유지 및 운영을 위해 경작하는 전답인 마위전은 총 627결(結'1결은 1등급 기준 약 1㏊)에 이른다. 장수역은 대마 2두, 중마 2두, 소마 7두 등 역마 11두를 보유했으며 마위전 67결을 경작했다.

이처럼 교통의 요충지인 영천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장수역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역마를 운영한 '말의 고장'이었다.

◆조선통신사 사행길…마상재 공연

영천은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을 위해 전별연을 베푼 곳으로 마상재(馬上才) 공연이 펼쳐진 곳이다.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 사행 중 11회나 영천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영천은 서울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이 일본으로 가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사행노정에 포함돼 있었으며 역말을 갈아탄 곳이다. 11회의 통신사행 중 1636년, 1643년, 1682년, 1711년, 1719년, 1748년, 1763년 등 7회의 마상재 공연기록이 남아 있다.

경상감사가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에게 베푼 전별연은 영천시내 조양각에서 진행됐다. 마상재 공연은 조양각 맞은편 금호강변에서 펼쳐졌다. 마상재는 말을 타고 다양한 기술을 부리는 사람이나 기예를 말한다. '달리는 말 위에 서기' '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달리기' '말꼬리를 베고 자빠져서 달리기' 등 8가지 말타기 재주가 포함된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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