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제2부> 16. 타슈켄트의 어제와 오늘

입력 2012-10-03 15:07:08

말 탄 채 손 흔드는 티무르 "중앙亞 수도 영광 부활시키자"

아미르 티무르가 말을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티무르 광장. 이곳은 우즈베키스탄 민족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르 티무르가 말을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티무르 광장. 이곳은 우즈베키스탄 민족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명의 일본군 포로들에 의해 건립된 나보이 오페라극장. 라마단 시기에는 밤이면 많은 시민들이 분수 옆으로 몰려와 휴식한다.
수백 명의 일본군 포로들에 의해 건립된 나보이 오페라극장. 라마단 시기에는 밤이면 많은 시민들이 분수 옆으로 몰려와 휴식한다.
각종 관광기념품 및 골동품 등을 파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각종 관광기념품 및 골동품 등을 파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브로드웨이' 보행자 거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는 안호르 운하에서 한 소년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는 안호르 운하에서 한 소년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서둘러 사마르칸트를 출발했다. 버스는 약 5시간을 달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실크로드를 종주하면서 자동차길 10시간은 보통이라 크게 먼 여정은 아니었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약 22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대도시이다. 시가지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3개 노선이나 달리고 있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는 줄줄이 대형 빌딩이 우뚝 서 있어 과거의 타슈켄트와는 전혀 다른 근대도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예부터 오아시스 도시로서의 역사는 길어 약 2천 년 전에는 '차치'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에 의해 한때 당나라에 점령되어 석국(石國)이 되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중개 지점으로 번영했던 11세기 무렵부터는 '타슈켄트'(돌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몽골 등지에서 가져온 보석을 재가공하여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어 서양에 팔았다. 그래서 돌(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나라라는 의미로 석국으로 불렸다고 한다. 중국 우루무치에서 사마르칸트로 통하는 실크로드 '초원의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무역의 요지로 발전해 왔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에게 도시가 초토화된 후 티무르 제국과 샤이바니 왕조시대에 다시 재건된다. 1865년 제정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도시의 면모는 크게 바뀐다. 러시아인들이 몰려와 살게 되고 구획정리가 단행됐다. 지금의 안호르 운하를 경계로 동쪽에는 러시아인 거주 지역이 되어 신시가지가 조성되는 등 분할 통치가 시행됐다. 그 구분도 1966년 4월 26일 이 도시를 뒤흔든 대지진으로 일순간에 지역의 태반이 파괴되었다. 구 소련 각지로부터 3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투입되어 약 5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근대도시로 태어나게 했다.

신시가지 중심지만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타슈켄트에서는 실크로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인다. 고대 모스크나 서민들의 흙벽돌집은 구시가지에 조금 남아 있다. 그리고 새롭게 조성한 공원 등지에도 과거의 역사적인 모습을 조금씩 재현하고 있다,

아미르 티무르 광장은 우즈베키스탄의 심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타슈켄트에서 관광코스를 선택할 때는 이곳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도로가 부챗살처럼 펼쳐진 이곳에는 아미르 티무르가 말을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전에는 마르크스의 상이 서 있었고, 또 그 전에는 스탈린, 레닌의 모습이 있었다. 티무르를 통해 민족정신을 살려 재건의 정신적 토대로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과거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비단길을 지배했던 티무르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자는 시도이다. 광장의 뒤편에는 돔형 지붕을 가진 국제회의장이 있고 명물 시계탑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페라와 발레 공연장인 나보이 극장은 2차 세계대전 때 잡혀 타슈켄트에 수용돼 있던 수백 명의 일본군 포로들에 의해 1947년에 완공돼 타슈켄트의 명물이 됐다. 특히 대지진 때도 꿈쩍하지 않고 손상이 없었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또한 그들이 동시에 방문하는 곳으로 2차 대전 후 구 소련에 억류되어 있다가 숨진 일본군 포로들의 묘지와 자료관도 있다.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는 '철수 바자르'가 있다. 돔형 지붕을 가진 이곳은 오랜 역사를 가진 타슈켄트의 대표적인 바자르로 실크로드 시대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주로 '철수'라고 발음을 하나, 정확하게는 '초르수'에 가깝다. 우즈벡어로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라는 뜻이다. 철수라는 이름이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어서 가장 쉽게 그 이름을 기억하는 바자르이다. 방문객들이 엄청 붐비는 곳이어서 관광가이드는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타슈켄트는 계획도시여서 넓은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가로수의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중에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보행자 거리에는 각종 관광기념품 및 그림, 골동품 등을 파는 노천 가게가 있다. 타슈켄트는 이제 명실상부한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심장부답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다. 대우에서 생산된 한국형 자동차들이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 현대도시로서의 미래도 보인다. 그 옛날 이곳 석국을 방문하고 대당서역기에 기록을 남겼던 현장법사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어떤 감회를 느낄 것인가.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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