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만성 골수성 백혈병 투병 최병림씨

입력 2012-10-03 09:01:18

위암 넘겼더니 백혈병…아내 뇌출혈은 시한폭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최병림 씨는 아들로부터 골수를 받을 수 있는데도 수술비가 없어 진통제에 의지하고 뇌출혈 잠재 환자인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최병림 씨는 아들로부터 골수를 받을 수 있는데도 수술비가 없어 진통제에 의지하고 뇌출혈 잠재 환자인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백혈병을 앓고 있는 최병림(62'대구 달서구 송현동) 씨는 약 먹을 시간이 되자 약이 수북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이 약 저 약 꺼냈다. 그런데 모두 진통제일 뿐 정작 백혈병 치료제는 없었다. 백혈병 치료제는 더는 효과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석 달 전 약을 끊었기 때문이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인 최 씨에게 남은 치료 방법은 골수이식뿐이다. 다행히 아들 혁준(32) 씨의 골수가 맞아 이식만 하면 되는 상태지만 4천만원이나 되는 수술비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생계수단, 택시를 팔다

최 씨는 택시운전 기사였다. 젊었을 때부터 운전 관련 일만 해 왔던 최 씨는 영업용 택시 12년 만에 꿈에 그리던 개인택시 면허를 얻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개인택시 1년 차이던 2003년, 종합검진에서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위 3분의 1 이상을 잘라내야 했다.

위절제술 이후 위암은 다 나았지만 '산 넘어 산', 이번엔 백혈병이 찾아왔다. 어느 날 심한 감기몸살 증상이 나타나 '최근에 무리를 좀 했나 보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점점 악화되더니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갈 정도로 심각해졌다. 진단 결과 '백혈병'. 순간 최 씨의 부인 손말숙(53) 씨의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 남편은 정말 한 번도 남 해코지한 적 없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사람에게 이토록 잔인한 일이 잇따르는지 하늘이 정말 무심했어요."

이때부터 최 씨의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매일 어지럼증과 근육통에 시달리며 치를 떨었다.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보통 사람이 하루에 한 알 먹으면 될 진통제를 세 알씩 삼켰다. 그러다 보니 소위 '약발'이 떨어져 진통제가 듣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이제 막 여름이 끝났는데 최 씨의 방에는 전기온열 매트가 깔려 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몸이 계속 따뜻해야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최 씨는 "체온이 조금이라도 내려가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이 미친 듯이 쑤신다"고 했다.

투병 생활 3년이 되자 생계수단인 택시 운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매달 수십만원이 드는 약값으로 장성한 아들, 딸의 결혼 자금을 집어삼켰다. 전셋집을 월세로 바꿨고, 마지막 생계수단인 개인택시 면허와 차량마저 팔아넘겼다. 이제 최 씨에게 남은 건 기초수급생활가구에게 주는 지원금과 딸 진이(31) 씨가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60만원이 전부다.

◆아내 역시 뇌출혈 환자

아내 손 씨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출혈 '잠재' 환자다. 젊었을 때부터 항상 머리가 아팠다는 손 씨는 30년 전 첫 번째 뇌출혈을 맞았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뇌질환이 손 씨를 계속 괴롭혔고 10년 전 남편 최 씨의 위암 수술 직후 결국 쓰러졌다. 진단 결과 '모야모야병'. 목 앞쪽을 통해 뇌로 들어가 뇌에 필요한 피 약 80% 정도를 공급하는 내경동맥 끝 부분이 막혀 뇌기저부에 아지랑이처럼 가는 수많은 비정상 혈관이 만들어지고, 이 혈관들이 터져 뇌출혈을 일으키는 병이다.

최 씨는 위암에서 호전되자마자 바로 손 씨를 간호해야 했다. 아이들도 어렸고 간병인을 쓸 형편도 안 됐기 때문이다. 최 씨는 "갑자기 아내가 머리가 깨질 듯 아파하더니 온몸에 마비가 오면서 쓰러졌다"며 "아내는 기억 못하겠지만 드릴과 같은 무시무시한 도구들이 아내의 두개골을 뚫어 피를 뽑아냈다"며 끔찍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 때문에 손 씨의 몸속에는 온갖 의료기기가 심어져 있다. 머리 뒤에 뇌로 혈액을 보낼 수 있는 펌프가 장착돼 있고, 뇌에 물이 차면 바로 뽑아낼 수 있는 호스도 달았다. 손 씨의 병은 완치가 힘들어 계속 혈압 조절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이 백혈병으로 몸져눕고 나서는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어졌다. 손 씨는 "여름과 겨울에 특히 조심해야 하지만 남편 간호가 먼저이기 때문에 내 몸 관리엔 소홀해질 수밖에 없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자식들 때문에 산다

아들 혁준 씨는 지금 따로 나가 살면서 월급 대부분을 부모님께 보낸다. 최 씨는 "아들이 자기 먹고살기도 빠듯할 텐데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전부를 보내더라"며 "아들은 '천금을 준들 부모를 살 수 있느냐'고 하지만, 저축도 해야 하고 결혼준비도 해야 할 텐데 내외가 다 이렇게 아프니 큰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딸 진이 씨는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했지만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IMF)가 닥치면서 4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고, 이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벌고 있다. 진이 씨도 최근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지만 병마와 싸움하고 있는 두 분 때문에 치료는커녕 아프다는 내색조차 못하고 있다.

손 씨는 "딸 진이는 '집안의 기둥'이다.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암울했을 때 '그래도 약만으로 버티실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나를 다잡아줬다"며 "지금도 병원비를 보태고 엄마 아빠 대신 막내 영준(16)이 공부시키며 가장 역할을 한다"고 했다.

최 씨는 1, 2주 간격으로 병원에 들르지만 병원에 가서 할 수 있는 거라곤 혈액 검사와 진통제 처방뿐이다. 골수 이식 말고는 더는 방법이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는 최 씨와 손 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버티기'뿐이다. 최 씨의 몸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손 씨가 더는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고 또 버티는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악화된대요. 그렇게 되면 수술도 소용이 없대요. 어떻게 해야 할지…."

손 씨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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