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마을 예천 회룡포마을
#드라마 촬영지로 더 유명해져 비룡산 전망대 '한폭의 그림'
# 20여분 거리 삼강주막엔 조선시대 나그네 정취가
'가을동화'는 너무나도 예뻐서 슬프다. 가을이 무르익는 이맘때는 이런 곳에 한 번쯤은 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소백산 능선의 산자락이 둘러싸고,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도는 육지 속 섬마을인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에서는 가을동화 속 낭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2000년 TV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은 한적한 전원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기자기한 산들이 감싸 안은 평야지대와 추수를 앞둔 황금빛 들녘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이다.
◆회룡포 마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예천IC에서 내리면 갈등이 생긴다. 회룡포 전망대(이하 회룡대)로 갈 것이냐, 회룡포 마을로 먼저 갈 것인가.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순서. 회룡포의 전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로 향했다. 비룡산 입구에서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는 1시간 거리. 편한 길을 선택했다. 전망대 가는 길에 장안사가 있고 그 입구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가파르다. 앞차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잠시 멈췄더니 차가 뒤로 '훅' 밀린다. 초보운전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10분 정도 거리다. 장안사를 지나니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모두 232개의 계단. 다리가 후들거린다. 헐떡거리며 회룡대에 오르자 발밑으로 가을동화가 펼쳐진다. 산과 들의 사랑스런 어울림은 한폭의 그림이다.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마을 중앙에 '곤충나라 예천'이라고 큼직하게 색깔별로 장식해 두었다. 생뚱맞다.
회룡포는 한때는 죄인의 임시 귀양처였으며, 한국전쟁기에는 피란처이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경북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했다. 회룡포는 비상하는 용처럼 물이 마을을 휘감으며 돌아나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남쪽으로 흘러가다 길을 막아선 비룡산을 만나자 350도 돌아나가며 거대한 육지 속 섬을 만들었다. 물길 끝에 뭍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어서 아침 이슬처럼 금방 '똑' 떨어질 것 같다.
◆장안사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 중턱에 위치한 장안사에 들렀다.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비룡산 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범종각이 하늘에 걸린 듯 서 있다. 장안사는 하천을 낀 절벽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아슬아슬하다. 사찰 터가 넓지 않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이 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759년(신라 경덕왕 8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조사가 창건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범종각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이내 중창불사의 흔적인 대불이 눈에 들어오고 회룡대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큰 법당 앞에는 귀여운 두 사자상이 마치 희희낙락하며 무엇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이나 한눈을 팔았다.
장안사를 내려와서 회룡포 마을 구경에 나섰다. 이정표대로 가다가 갑자기 길이 끊긴다. 금빛 모래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위로 놓인 뿅뿅다리를 건넜다. 걸으면 '뿅뿅' 소리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글쎄다. 강물이 깨끗해서 강바닥이 훤히 보인다. 어린 물고기도 구경하고 곱게 쌓인 모래도 만져보고 물놀이에 딱이다. 서늘한 날씨 때문에 상상만 해보았다. 비록 우회하는 길이지만 차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개포면사무소 앞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삼강주막
회룡포마을에서 20여 분을 달리면 삼강주막이 나온다. 3개의 강이 만나는 삼강과 낙동강 1천300리 마지막 주막이다. 삼강주막의 '삼강'(三江)은 글자 그대로 3개의 물줄기가 모이는 곳.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하는 낙동강과 경북 봉화로부터 흘러오는 내성천, 문경의 금천이 이곳에서 몸을 섞는다. 삼강주막은 삼강을 건너기 전인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위치하여 110년 전 문을 연 조선시대 주막으로 옛 정취가 물씬 나는 현존하는 마지막 주막이다. 옛날에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과거길에 나선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70여 년 세월 동안 이곳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가 90세의 일기로 2005년 10월에 별세한 뒤 방치돼 왔다. 그러다 2008년 1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주막 옆에는 수령 500년 이상인 회화나무와 함께 들돌이 보존되어 있다. 들돌은 본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로, 장성한 농촌 청년들이 농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이곳에 있는 들돌은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물류의 이동이 늘어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일꾼들의 품삯을 정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한 번 시도를 해봤다. 꿈쩍도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나 보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묵을 시켰다. 막걸리 한 주전자 5천원, 묵 3천원. 양이 푸짐하다. 서너 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세상 시름을 잠시 잊는다. 주막 마루에 큰 대자로 누웠더니 가을 하늘이 이불처럼 포근하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안동IC에서 빠져 예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회룡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나타난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장안사·회룡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을 잡으면 이내 장안사 턱밑 주차장에 닿는다. 중앙고속도로 예천IC까지 가기보다 앞서 만나는 의성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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