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전시 공간 디자인, 디스플레이, 조명

입력 2012-09-28 11:13:47

지난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뮤제오그래피 국제학술심포지엄'의 내용을 다시 꺼내어 소개하고자 한다. 예술 작품과 그것을 담아내는 미술관, 그 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뮤제오그래피(museography), 즉 그래픽적 요소를 중시하는 '박물관 형태학'은 논리와 사유 중심의 뮤제올로지(museology), '박물관학'과 구별된다. 미술관 건축, 디스플레이, 조명, 그리고 수집품 관리 등이 뮤제로그래피의 연구 대상이다.

먼저 루브르 미술학교에서 미술관 건축을 강의하는 장-폴 미당 교수는 미술관 건축에 대해 무엇보다도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다. 또한 전시장 내부는 중성적 공간이어야 하며, 자연 채광의 도입을 적극 추천했다.

건축가 로랑 보두앵 역시 중성적이고 인위적인 전시 공간에 자연을 도입한 미술관을 소개했다. 물론 훌륭한 전망을 갖추고 잘 가꾸어진 정원이 건물과 어우러져 있다면 자연을 품은 훌륭한 미술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 속에서 이러한 장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늘, 바다, 돌, 식물 등 자연을 대체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중력, 빛, 시간의 흐름 등을 도입한다. 즉 건축이란 보이지 않는 자연을 보이도록 하는 것으로, 건축을 통해 시간의 개념을 대신하여 빛을 디자인하고, 사물과 사물의 그림자 관계를 고려한다.

역시 미술관 전문 건축가로서 프랑스 파리 피카소미술관과 서울의 대림미술관을 개축한 뱅상 코르뉘는 새로운 전시 공간이 무조건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새것만 제시하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느니, 항상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특히 개축의 경우 기왕의 건축물과 그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고려해 공장 같은 미술관, 가정집 같은 미술관 등 최초의 흔적들을 지워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트라스부르그 현대미술관 폴 에르베 파르시는 현대미술관과 소장품, 그리고 그 관리에 대해 그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나는 천사의 날개를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로 유명한 19세기 화가)와 오늘날의 예술가를 비교하며, 쿠르베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사실주의 미술 운동을 주도한 이론가였으며,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고, 직접 전시장의 공간을 도면으로 그리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예술가는 어떠한가? 한 작가가 전시에 초대되고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기 위해서는 우선 미술 시장에 그의 작품 가격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술 시장은 작품의 미학적,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작품의 사회적, 정치적 수익성을 따진 연후에 그 값을 부여한다. 특히 최근 예술의 미학적 불안정함은 미술 시장의 역할을 한층 더 강화시켜 주고 있다. 이렇게 예술품의 복수적 가치를 고려하는 환경은 작품 재료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미술관은 일종의 실험실이 되었고 전시 공간은 더욱더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전통적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한편 퐁피두센터의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 '샘'의 변기는 실제의 것이 파손되어 다른 상표의 비슷한 변기를 구입하여 새로 사인한 것이라 한다. 이제는 작품 복원의 개념뿐만 아니라 원본에 대한 인식마저 바뀐 셈이다.

오늘날의 전시장은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는 모험의 공간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시 개념만 작가에 의해 주어지고 나머지 설치 구상은 미술관이 실현하는 협업 관계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전시장은 작품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전시 공간 이외의 휴게실, 복도의 의자, 전등, 창문 등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서 전시마다 매번 달리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미술품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한 '뮤제오그래피'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수균/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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