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도가 갈라져서 붙여진 이름 삼도봉, 매년 10월 10일 화합의 축제장
삼도봉(三道峰)은 경상'충청'전라 3개 도(道)의 경계에 자리해 예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소백산 기슭 삼도봉은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의 국경이었다.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경상'충청'전라 삼도의 분기점이라 삼도봉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세분화돼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가 경계를 이룬다. 3도 3시'군이 마주하는 곳이다.
삼도봉은 해발 1,176m이다. 정상에는 높이 2.6m의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무게가 7.6t에 이르는 거대한 돌탑이다. 인력으로 산 정상에 올려놓기가 불가능해 군 헬기의 도움을 받았다. 탑은 거북 받침의 기단부와 3각 용조각의 탑신부, 원구의 상륜부로 구성하고 있다. 상륜부는 오석으로 된 지름 1m의 여의주 모양을 한 둥근 구슬이 얹혀 있다. 둥근 해와 달을 표시하며 영원한 화합을 상징한다. 탑신부는 3마리 용이 여의주를 떠받치고 있다. 웅지, 기상. 등용, 길상으로 영원한 발전을 뜻하는 3마리 용을 대리석으로 조각, 해와 달을 떠받쳐 빛을 발하도록 해 지역 간 화합의 상징이다. 기단부는 3마리 거북이 기둥과 원구의 뜻을 영원히 받듦을 표현하고 있다. 거북 머리가 3개 시'군이 위치한 북'동'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탑의 북면에는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三道峰 大和合 紀念塔)이, 서면에는 '태백산맥이 분기하여 동서로 뻗어내려 소백산맥의 큰 봉(峰)으로 경상'충청'전라가 이곳에서 갈린다하여 삼도봉이라 하였다'는 삼도봉 유래가, 그리고 동면에는 '삼도 대화합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소백산맥의 우뚝 솟은 봉우리에 인접군민의 뜻으로 이 탑을 세우다'라는 건립 취지문이 각각 새겨졌다. 이 기념탑은 이들 3도민들이 지역 불신의 벽을 허물고 상호 화합과 공동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뜻에서 힘을 모아 1990년 세웠다.
◆ 매년 10월 10일에는 삼도봉에서 3도민 화합 잔치 열려
매년 10월 10일이면 이곳 삼도봉에서 3도 3시'군민들이 만남의 날 행사를 갖는다. 해묵은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이웃주민 간의 화합을 범 민족적'민주적 대화합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김천시 (당시 금릉군),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이 1989년 첫 만남을 가졌다. 올해로 24회째를 맞는다. 이들 시'군은 첫 만남의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문화원과 함께 '지역 간 교류를 통해 상호 간의 우호를 돈독히 하고 이의 발전을 추구하는 모든 시책을 뒷받침한다'는 등 5개 항의 '삼도봉 대화합 협약'을 맺었다. 이후 삼도봉 행사를 3개 시'군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만남의 모임을 주최하고 있다. 올해는 김천시가 주관해 다음 달 10일 '제24회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연다.
말씨가 다른 3도민들이 서로 다른 길로 올라와 삼도봉 정상에 모여 화합과 공동발전을 염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고 식사를 함께 하며 정을 나눠 오고 있다. 삼도봉 만남의 장은 전국의 대표적인 지역 화합축제로 알려져 있고 전국적인 산악행사로도 자리매김을 했다.
◆ 삼도봉 아래에는 그들만의 삼도봉 문화 꽃 피워
삼도봉 아래 김천 쪽에 자리한 마을이 부항면 해인리와 대야리다. 마을 주민들은 이웃한 충청도와 전라도 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독특한 속칭 '삼도봉 문화'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삼도봉 너머로 시장을 보러 다니고 집안끼리 혼사를 치르면서 세월의 정(情)을 나누었다. 지금은 교통'통신의 발달로 외부 출입이 잦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이웃인 산 너머 마을로 왕래가 유일한 나들이였다.
삼도봉 아래 첫 마을로 불리는 해인리는 해인동과 윗두대마을로 나뉜다.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서면 또는 상서면으로 속하다가 1914년 상서면과 하서면이 합해져 부항면이 신설될 때 해인리로 통합되었다.
마을은 임진왜란 때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광산 김씨 김성옥(金聲玉)이 골 깊은 삼도봉으로 피란을 왔다가 정착했다고 전한다. 마을 가운데에는 입향조를 추모하는 재실 둔암재(遯庵齋)와 쌍광재(雙光齋)가 높이 솟아 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 산골 깊은 마을을 누가 찾으랴? 최근 해인동(海印洞)은 해인농원과 해인산장, 오미자농장,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통해 공기 좋고 물 맑은 마을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해인'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신라시대에 마을 뒤 골짜기에 해인사(海印寺)라는 큰 절이 있은 연유로 사찰이름을 따서 해인동이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절터가 발견되어 수년 전 마을주민들의 손으로 산책로가 개설되기도 했다. 일설에는 경남 합천의 해인사가 이곳에서 옮겨갔다고도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잘 포장된 도로가 개설되기 전 영동으로 넘나들었던 삼마골 쪽으로 가다보면 해인산장 입구에 흡사 우람한 몽둥이와 같이 생긴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이 바위가 그 유명한 고추방골 남근석(男根石)이다. 자세히 보면 발기된 남자의 성기를 빼어 닮았는데 길이만도 3m, 굵기가 2m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물이다. 남근석 앞에는 안내판을 세워 놓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인근에서 산장을 운영하는 김용원(66) 씨는 "옛날부터 해인동 고추방골 남근석은 효험이 좋기로 유명해 아들 낳기를 염원하며 기도를 드리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돌에 대한 입소문이 삼도봉 너머까지 이어져 심심찮게 전라도와 충청도 말씨를 하는 여인들이 남근석 위치를 묻기도 한다.
◆갈불, 대야리, 홍심동…삼도봉 아래 옹기종기 모여
해인동에서 오징어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수리미재를 넘으면 삼도봉 아래 대야리다. 대야리는 갈불마을과 홍심동, 대동으로 불린다.
"갈불이라는 마을의 지명은 예부터 이 마을 주변 산에 칡이 많아 칡 갈(葛)자에 평평할 평(坪)자를 써서 갈평(葛坪)이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평'이 '불'로 변해 갈불로 불리게 됐다"는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또 행정동 이름인 대야(大也)라는 원래 지명은 천지(天地)였다. 그런데 나라에서 서민촌으로서 마을 이름을 '천지'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하여 하늘 천(天)자에서 한 일(一)을 빼어 큰 대(大)자로 고치고 땅 지(地)자에서 흙토(土)자를 빼서 어조사 야(也)자로 고쳐 대야(大也)리로 했다는 설이 전한다. 또 이 마을은 딱박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닥나무가 많아 질 좋은 한지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김명규(82) 노인회장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 구남천변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닥나무를 삶고 한지를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갈불마을에서 대야리로 가다가 왼쪽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다 보면 홍심동이 있다. 홍심(紅心)이라는 것은 과녁의 붉은 중앙을 뜻하는 것으로 한말 이곳에 은거한 이용직(李容直'1824-?)이 파직당한 설움을 곱씹으며 한을 담아 붙인 지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용직은 흥선대원군의 인척으로 대사헌, 공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당대의 실력가로 위세가 대단했다고 전하는데, 경상도 관찰사 재직 시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파직당한 인물로 전한다.
◆한때 금광으로 번창했지만 여전히 삼도봉 사람
일제강점기만 해도 김천이 금(金) 산지로 명성이 높았다. 삼도봉 자락인 대야리 인근 금광굴에서 금이 많이 채굴됐다. 일본인 기술자, 인근 삼도봉 마을에서 광부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곳에 경찰 주재소가 들어설 만큼 시골 속의 도회지로 흥청거렸다고 한다. 지금도 인근 산에는 곳곳에 금굴의 흔적이 남아 있어 등산객들이 폐광구에 빠지는 일이 가끔 발생하는 등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일확천금의 꿈은 폐광과 함께 묻혀버린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삼도봉 아래 마을은 한 때 80가구가 살만큼 번창했다. 다른 마을도 40가구 정도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마을마다 10~20여 가구에 불과하다. 여느 시골처럼 도시'산업화에 따라 주민수가 절반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도회지와는 다르게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람을 따지지 않고 그냥 삼도봉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글'사진 김천'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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