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촌수 어색한 젊은층…'똑똑한'추석을 위한 촌수 알기
'즐거운' 명절이라지만 '스트레스'도 늘 따라붙죠. 명절 선물 고민에 머리는 지끈지끈, 막히는 귀성길에 체력도 바닥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호칭'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친척 어른들과 또래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해서 대충 인사만 하고 재빨리 방으로 숨어버리는 건 아니신지요?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척간에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만 지속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오손도손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운 명절은 '호칭 제대로 알기'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요? 호칭에 대해 한 번 알아봤습니다.
◆당신은 '재종'을 아십니까?
직장인 황모(35) 씨는 지난 설에 할머니 댁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황 씨는 거래처에서 같은 성씨인 한 직원을 알게 됐다. 성씨가 같은데다 아버지 고향도 같다고 해서 친해진 것. 둘은 설 잘 보내라며 선물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설날 아침 할머니 댁 아랫마을에 있는, 할아버지의 동생인 종조부 댁에 몇 년 만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가 황 씨는 그 직원과 마주쳐 깜짝 놀랐다.
"알고 봤더니 그는 저의 재종형제, 할아버지 형제의 손자였습니다. 촌수로 따지면 6촌이죠. 어릴 적엔 명절에 얼굴만 잠깐 봤을 뿐 어울리지 않아 서로 몰랐죠. 얼굴도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다 각자 서울에서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한다며 명절에 고향에 내려오지 못하는 등 엇갈리며 서로 보지 못했고,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그날 두 재종형제는 각자의 아버지(서로에겐 당숙'5촌)들로부터 "이놈들아. 너희들 어떻게 재종지간에 얼굴도 모를 수가 있느냐. 우리 때는 친형제나 다름없이 어울려 지냈는데"라며 우스갯소리 섞인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추석을 2주가량 앞둔 이달 18일 취재진은 대구 북구의 한 대학교와 중구 동성로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20명을 무작위로 붙잡고 "당신은 재종(6촌)을 알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단 한 명만이 알고 있었다. 직장인 박선권(34'경북 영천시) 씨는 "아버지가 종손이라 집에서 큰 제사를 1년에 여러 번 지낸다. 그래서 집에 수십 명의 친척이 모인다. 이들을 분류해 대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 말고는 재종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기타 답변으로 "정종과 같은 술 이름인가요?"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왕 이름인가요?" 등이 있었다.
이들은 "4촌 정도까지는 안다. 그래서 '이종' '고종'이라는 명칭은 익숙하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친척 행사에서 이종'고종 형제는 늘 만나지만 그 바깥 촌수의 친척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시댁'처가에 가면 호칭 스트레스 더욱 증가
젊은 부부들은 시댁과 처가에 가서 더욱 큰 호칭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른들께 먼저 다가가서 호칭을 부르며 살갑게 인사드려야 하기 때문.
결혼 1년차 새댁 김모(31) 씨는 "하루는 시댁, 다음날은 친정으로 강행군을 해야 하는 명절에는 부부의 호칭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시댁에 가서 얼굴도 처음 보는 남편 쪽 친척들이 대거 몰려들 때는 차라리 부엌 구석에서 전을 부치고, 설거지나 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남자보다 여자가 명절 호칭 스트레스에 더욱 민감하다고 했다. "남자들끼리는 서로 모르던 친척간이라도 술상 차려놓고 어울리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직업적으로 상부상조할 얘기 등을 나누며 호칭도 알고 친해지죠. 사회성이 더 높다고 할까요? 하지만 여자들끼리는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친해지기가 어렵죠. 그러다 보니 다음 명절 때 봐도 호칭을 모르거나 헷갈려서 곤혹스러워요."
◆친척 호칭은 알 필요 없다?
이에 대해 6촌끼리도 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살던 시대가 핵가족 시대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흔하게 나온다. 여기에 좀 더 첨가되는 얘기가 있다.
대구 중구 한 경로당에서 만난 박모(80) 할아버지는 "핵가족 시대도 20세기와 21세기 사이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도시로 나간 핵가족이 명절은 물론 행사 때마다 고향의 대가족 친척들과 만나며 교류했다. 그런데 요즘 핵가족은 명절이 아니면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물론 고향에 있던 대가족도 해체되고 있다. 그러면서 어릴 적에 대가족을 경험했던 아빠와 엄마는 호칭을 알고 있어도, 자녀들은 대가족 친척을 접하기 어려워 호칭을 알 수도 또 알 필요도 없게 됐다. 친척을 가리키는 '호칭 명사'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작 혈연관계인 친척은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타인과의 인맥을 더 중요시하는 풍조는 만연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행이 대표적이다. 2천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우리나라 대표적 SNS인 싸이월드에서 인맥을 가리키는 용어는 '일촌'이다. 일촌이 확장되며 촌수도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이후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다른 SNS도 등장, 일촌을 확장하려는 현대인의 사회적 본능을 기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상진 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친족집단은 지나친 혈연'지연 등의 활용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개인이 질병'사고'실직 등 어떤 위기에 당면했을 때 가족적으로 대응하는 긍정적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학생 장모(28) 씨는 "친족집단이 점점 해체되면서 개인의 위기를 해결해 줄 집단을 친척이 아닌 타인으로 구성하려는 것이 요즘 현대인의 사회적 본능이 된 것 같다. 나만 해도 스터디 모임이나 기업 인턴 활동을 하며 지식 쌓기나 직무 배우기보다는 인맥 쌓기에 더 치중한다"고 말했다.
◆명절에 친척 호칭 알고 가자
살펴보니 명절 호칭 고민은 주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안내에 따라 이름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친척 가계도를 그려주는 스마트폰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패밀리앱'은 실행 화면에서 '인물추가' 메뉴를 계속 클릭해 가계도를 작성해나가며 친척별 호칭도 알 수 있는 앱이다. 친가'외가'처가'처외가 등 네 가지 가계도를 작성할 수 있다. 비슷한 것으로 '가계도' '친인척호칭법'이라는 이름의 앱이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고 있다.
앱도 좋지만 이는 명절 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순 무마용이다. 머릿속에 친척 가계도를 그릴 줄 알고, 그런 다음 정확한 호칭을 붙일 줄 알면 제일 좋다.(그래픽)
참고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야 할 호칭도 있으니 알아두자. 결혼한 여성은 시부모나 시댁 식구들 앞에서 연애할 때처럼 '오빠' 또는 '누구씨'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이' '저이'라고 부르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비' '아범'이라고 칭해야 한다. 결혼한 남성은 아내를 친가에서는 '그 사람' '~어미'로 칭하고, 처가에서는 '그 사람' '집사람' '안사람'으로 부르면 된다. 시댁에서든 처가에서든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는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면 된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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