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 크림(하)

입력 2012-09-20 14:00:43

하드록을 가장 영국적 음악으로 등극시켜

에릭 클랩톤, 잭 블루스, 진저 베이커로 구성된 록트리오 '크림'의 결성은 영국 블루스가 주류 음악으로 등극하는 신호탄이었다. 또 하드록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열기도 했다. 이미 1960년대 영국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력으로 유명했던 세 사람은 블루스 리바이벌 운동 초기 거장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밴드를 구상하고 있었다.

음반 수집가들을 위해서 이들의 이전 활동을 살피면 잭 블루스는 그레이엄 본드 오가니제이션과 블루스 브레이커스, 맨프레드 맨 밴드에서 활동했다. 진저 베이커도 그레이엄 본드 오가니제이션에서 활동했는데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밴드를 구상할 때 진저 베이커 같은 드러머를 원한다는 광고를 낼 만큼 혁신적인 연주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에릭 클랩톤은 이미 영국 언더그라운드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는데 야드버즈의 초대 기타리스트였고 블루스브레이커스에 참여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크림은 1966년 런던에서 열린 재즈&블루스 페스티벌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무대를 펼친다. 이미 연주력만큼은 최고라고 자타 공인했던 이들이지만 대중들을 상대로 한 첫 번째 무대의 반응을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크림에 앞서 공연을 가지는 팀은 당시 최고의 악동 밴드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더 후'(The Who)의 무대였던 탓에 긴장은 더 했다. 드디어 무대에 오른 크림은 단 3곡을 연주했는데 관객들은 반응은 이들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냉랭했다. 기존의 블루스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해석한 연주와 당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긴 즉흥 연주에 관객들이 당황해 했다.

하지만 3번째 곡이 연주되고 세 사람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연을 마친 연주자들과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음악인들에게 이들의 연주는 새로운 록의 세계를 열어주는 듯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에릭 클랩톤이 '기타의 신'(God of Guitar)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일화도 유명하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크림은 이듬해 앨범 '프레시 크림'(Fresh Cream)을 공개했고 연이어 '디즈레일리 기어스'(Disraeli Gears)를 공개한다. 앨범에 수록된 '선사인 오브 유어 러브'(Sunshine of Your Love) 히트로 미국 시장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으면서 하드록을 가장 영국적인 음악으로 등극시킨다.

이후 크림은 걸작 앨범 '휠스 오브 파이어'(Wheels of Fire)를 공개하고 마지막 공연을 가지며 2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을 마감한다. 이미 일정 부분 부와 명성을 얻었던 세 사람이 크림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은 음악인이 평생 짊어져야 할 업보일지도 모른다. 데뷔해서 몇 년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모습을 TV에 내 보내면 할 일 다 하고 중견 취급을 받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의아하게 여길 만한 일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