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선천성 항문폐쇄증 앓는 예슬이네

입력 2012-09-19 07:18:49

첫 딸 하늘로, 셋째마저 처음 듣는 병마가…

태어날 때부터 항문이 없는
태어날 때부터 항문이 없는 '선천성 항문폐쇄증'을 앓고 있는 예슬이. 엄마 유수진 씨가 예슬이를 안고 "우리 딸 예쁘죠?" 하며 자랑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생후 5개월 된 예슬이는 태어난 지 6시간 만에 수술대에 누워야 했다. 예슬이를 받은 간호사가 기저귀를 채우면서 예슬이에게 항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담당의사에게서 들은 병명은 '선천성 항문폐쇄증'. 변이 항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오면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듣는 병명. 그런데 그 병이 하필 '우리 딸', 예슬이에게 나타난 것이다.

◆예쁜 예슬이 옆구리의 비닐 주머니

17일 대구 달서구 성당동에서 만난 이현식(31)'유수진(32) 씨 부부는 딸 예슬이를 보여주며 "우리 아가 너무 예쁘죠?"라고 자랑했다. 올해 4월 얻은 셋째 딸 예슬이. 그런데 예슬이의 왼쪽 옆구리엔 비닐 주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예슬이의 왼쪽 옆구리를 뚫은 뒤 변이 나올 수 있는 관과 비닐 주머니를 채우는 수술을 했다. 추석이 지나면 검사를 받은 뒤 인공 항문을 만드는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 2차 수술을 받은 뒤에도 바로 비닐 주머니를 뗄 수는 없다.

유 씨는 "처음에는 예슬이의 병이 무엇인지 들어도 몰랐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뒤 인구 5천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병인 줄 알았다"며 "예슬이의 병은 단순히 항문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합병증도 유발할 수 있다는 말에 더 걱정이 앞선다. 벌써 심장에 구멍이 조그맣게 나 있고 신장에 물이 차는 신우증도 발생했다"고 눈물지었다.

이 씨는 "병원에서 수술을 빨리 받을수록 좋다고 해 1차 수술을 하긴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구멍을 뚫은 곳으로 장이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해 겁도 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며 "첫째 딸에 이어 예슬이마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로 보낸 첫째 딸

15년 전 이 씨가 일하던 렌터카 회사 사무실에 유씨가 지인을 만나러 들렀다가 우연히 알게 돼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2006년 첫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결혼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일단 혼인신고만 하고 살던 이들은 둘째 아이 예나를 낳기 한 달 전 만삭의 몸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첫째 예손이가 두 돌을 2주 앞둔 2009년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급성 중이염에 합병증이 생겨 빨리 조치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바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둘째 예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유 씨 대신 친정어머니가 예손이를 간호했다.

입원 이틀 뒤 갑자기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손이의 열이 40℃까지 오른데다 혈소판 수치도 갑자기 낮아졌다는 것이다. 저녁이 돼서야 열이 떨어져 겨우 혈소판 수치를 회복시키는 주사를 맞았지만 발작과 구토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날 오후 11시쯤 예손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병원에서 말한 예손이의 사망 원인은 급성 패혈증을 동반한 전신마비였다.

예손이를 떠나보낸 뒤 '행복한 가정'의 꿈도 함께 깨지기 시작했다. 먼저 양가의 사이가 급속히 나빠졌다. 시댁은 '손녀를 잘못 간호한 탓'을 하며 친정어머니를 나무랐고, 친정 부모는 외손녀를 떠나보낸 충격에 급기야 이혼까지 하게 됐다.

유 씨의 충격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예손이를 보내고 나서 다시는 그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는 유 씨는 결국 예손이의 장례식 후 이사를 해 버렸다.

◆돈을 벌 수 없는 부부

이 씨는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을 앓고 있는데다 어릴 때 부모가 헤어져 고모의 손에 키워졌다. 아버지가 가끔 이 씨에게 돈을 보내주긴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 씨는 중학교 때 학업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나 조금만 부딪쳐도 핏줄이 터져 퉁퉁 부어버리는 혈우병 증세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씨는 혈우병 때문에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씩 대학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는다. 이 씨가 맞는 진통제의 성분이 마약성 진통제인데다 자꾸 내성이 생겨 일반인이 4, 5회 맞을 분량을 한 번에 맞는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몇몇 약들은 비급여 항목이라 한번 갔다 올 때마다 8만~10만원을 써야 한다.

이 씨는 자신의 병보다 예슬이의 치료비가 더 걱정이다. 1차 수술은 보건소의 긴급의료지원금 140만원으로 해결했지만, 2차 수술부터는 돈을 빌릴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다.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긴 지 5년이 넘었고, 예슬이의 외가 쪽도 상황이 넉넉지 않다. 아내 유 씨는 아픈 예슬이와 아직 어린 둘째 딸 예나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 씨는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지 꼭 일을 하고 싶어한다. 유 씨 역시 상황이 좋아지면 일하러 나설 작정이다. 유 씨는 특히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간호와 요리에 관심이 생겼고, 가능하다면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유 씨는 "예슬이가 많이 호전되면 간호나 요리에 관련된 일로 돈을 벌어 남은 두 딸을 훌륭히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도 "일을 가릴 형편은 아니지만 지금 내 몸 상태에서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운전인 것 같다"며 "딸의 치료와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꼭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유 씨는 병원 침대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예슬이를 바라보며 가슴 속 억눌렀던 말을 속삭이듯 내뱉었다.

"지금 수술받지 않으면 예슬이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있대요. 이렇게 잘 웃고 활발한 아이인데… 하필 우리 같은 부모를 만나서… 예슬아, 미안해."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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