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너무 애쓰지 마세요

입력 2012-09-18 07:27:27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 전 지인들로부터 받은 카드와 편지뭉치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사연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조심스레 과거를 펼쳐가던 중 한 문장에 가슴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너무 애쓰지 마.'

애를 쓰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무언가 위로받은 느낌, 애를 쓰긴 썼나봅니다. 생각해보면 애를 써 보라고 명령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자신에게 좀 더 완벽해지라고 쉼 없이 요구하는 걸까요. 자신을 좀 편하게 놔두지 못하는 걸까요.

얼마 전 '블랙스완'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름답고 연약한 백조여왕의 역할에 적역인 발레리나가 사악하고 욕정으로 가득 찬 흑조 역할까지 해내길 원했을 때,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가며 흑조를 완벽하게 연기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의 코치는 "완벽이라는 것은 자신을 통제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풀어줄 때,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완벽주의는 개인적인 목표를 높게 정함으로써 우리를 분발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발레리나처럼 경계해야 할 신경증적인 완벽주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부족함을 찾고 주변의 모든 것에서도 결함을 찾아내는 부정적인 완벽주의자는 자신과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불행하게 됩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역할에서 완벽해지고자 자신을 몰아가던 발레리나는 종내 자기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즐기면서 완벽을 추구할 수만 있다면요. 그것이야말로 완벽주의자의 가장 완벽한 모습이 아닐까요.

오래 전 냄비 한 세트를 새로 구매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냄비들이 멀쩡한 데도 새로 구입을 결정한 이유는 미끼로 걸린 요리강습 때문이었습니다. 요리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흔한 요리밖에는 만들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 기회에 손님초대 척척 해내는, 주부수업 제대로 받은 것 같은, 대대로 물려줄 요리비법 몇 가지쯤 갖고 있는, 완벽한 주부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요리를 선보일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결과는 감동과 칭찬으로 대성공이었지요. 하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했습니다. 조리법이 적혀있는 종이를 한 단계씩 눈이 빠져라 쳐다보지 않고는 요리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각기 따로 노는 머리와 눈과 손, 저울과 온도계, 계량컵, 계량스푼이 없으면 간조차 맞출 수 없는 답답한 상태가 내가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요리가 나를 요리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이벤트를 끝으로 요리에 관한 환상을 접기로 했습니다. 화려한 요리는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자신과 타협을 보았습니다. 요리를 못한다 해도 얼마든지 괜찮았으니까요.

심리학자인 대니얼 고들립은 '마음에게 말 걸기'라는 책에서 '가끔은 더 이상 나를 바꾸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라고 합니다. 이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를 괴롭혀온 그 오랜 불안과 열등감도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합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아침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 봅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말입니다.

추석이 다가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고 자라나는 조카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형제들의 근황을 살피러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입니다. 그런 추석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요. 자신이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대치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의 기대치가 교차하는 자리에는 늘 부담감이란 것이 피어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이하면 어떨까합니다. 전도 부쳐 달라하고, 밤도 까 달라하고, '고생 했어', '고마워'같은 감사의 말들이 오가는, '그동안 수고 했어', '너무 애쓰지 마' 같은 치유의 말들이 오가는 따뜻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합니다.

백옥경/구미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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