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박근혜, 베드로를 배우라

입력 2012-09-17 10:52:18

베드로는 예수가 잡혀간 뒤 어떻게 되실는지 살펴보려고 제사장(祭司長)의 집으로 갔다가 여종에게 신분이 탄로 난다. 그리고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지'라는 물음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예수를 그토록 믿고 따랐던 수제자 베드로가 왜 그랬을까. 그로서는 반대파 사람들에게 해코지 당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부인했을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보다 예수를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의 비판과 공격을 더 두려워하고 위축당해 주인의 영적 가치를 부정해 버린 것이다.

요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보면 베드로를 생각해 보게 된다. 박 후보 반대 세력이 박 후보에게 아버지 박정희의 정치적 치적을 놓고 던지는 질문들은 박 후보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제사장 세력이 베드로에게 던진 물음과 유사하다.

대권 정적(政敵)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반대파들은 딸에게 아버지가 구국의 결단으로 일으킨 5'16 혁명을 혁명이 아닌 쿠데타라 말하라고 요구한다. 박 후보로서는 그들 요구대로 군사 쿠데타라고 인정하면 아버지의 순수했던 혁명 정신을 더럽히는 딸이 되고,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대답하면 반대파들이 퍼부을 수난과 함께 그들 세력이 지닌 권력 지분(표)을 잃게 된다.

5'16뿐 아니라 인혁당 사건, 정수장학회 소유권, 장준하 사망 사건 등등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건수들이 계속 끄집어내져 번복 시인 내지는 사과를 압박받고 있다. 예수의 사랑 덕에 수제자의 위치까지 올랐던 베드로처럼 일정 부분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 후보 자리까지 올라온 박근혜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들 앞에서 괴로울 것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가 될 것인지, 반대파 표를 잃고 권력을 놓치더라도 아버지의 정치 노선을 소신대로 지지하고 십자가를 질 것인지 기로에 놓인 것이다. 어쩔 것인가. 어떤 바람이 불어 닥쳐도 끝까지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아버지 닮은 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순간순간 반대 세력의 눈치 봐가며 말을 바꾸고 절반의 시인과 절반의 부정을 하는 겁 많은 베드로가 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녀는 벌써 말을 고치거나 바꾼 게 두 건이나 된다. 애당초 정치적 속내를 드러내지 말든지, 꺼낸 뒤에 바람이 불자 황급히 외투 깃을 올리고 '주눅 든 베드로'처럼 움츠러들면 어쩌자는 것인가.

아버지의 숱한 치적은 뒷전으로 밀린 채 한두 가지 실정(失政) 시비에 휘둘려 구국의 혁명마저 딸의 입으로 '아니오' 부정당하면 박정희를 알고, 겪고, 따랐던 계층의 마음이 떠나게 된다. 숲 속의 새를 잡으려고 손에 쥔 새를 날려 보내는 꼴이다. 혁명 당시 망국 직전 같았던 나라 상황으로 봤을 때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아버지의 구국 혁명과 정신을 행여나 표를 의식해 '아니오'라고 부인해 준다고 해서 반대쪽 그들이 표를 줄 거라 믿는가?

아버지 집권 시대에 나름 고통과 아픔을 겪은 계층은 물론 있다. 정치 소외 계층은 어느 정치 형태든, 어떤 지도자가 나오든 생겨나게 마련인 것이 정치 현실이고 세상의 속성이다. 그런 갈등도 역사가 흐르면서 서로를 치유하고 용서하며 다시 화합하는 과정과 노력을 통해 추스르고 갈 필요는 있다. 그러나 박 후보는 현대 정치사의 한 매듭을 매었던 당사자가 아닌 그의 딸일 뿐이다. 잘못 맺은 매듭은 대신 풀되 아버지를 부정하거나 (자식으로서는 절반의 부정도 부정이다) 정치적 화합을 빌미로 아버지가 곤경에 몰리게 두는 것은 인륜의 도(道)도 정치의 도(道)도 아니다.

깊은 밤 홀로 아버지의 영정 앞에 앉아 곰곰 생각해 봐도 5'16은 구국 혁명이 아니라 군인의 반역이라 생각된다면 절반의 말 바꾸기도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정적들이 갖가지 아버지에 대한 난감한 질문을 던져올 때 어떤 소신과 원칙으로 대답하고 주장할 것인지 확고한 역사 인식을 지녀야 한다. 설사 아버지를 지키고 따르려다 권력을 못 잡는 일이 있더라도 옳은 도의(道義)는 지켜라. 그게 박정희의 딸로서 해야 할 처신이고 권력 쟁취보다 더 큰 인간 승리다. 반대파와 대중의 심판이 두려워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마지막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게 될 때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당당하게 고백함으로써 바티칸 대성당에 묻히는 영원한 승리의 영광을 얻었듯이….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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