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쳤다 분리됐다… 생활 속 트랜스포머 기기 세상

입력 2012-09-15 08:00:00

대구 수성구의 한 자전거 전문점에서 고객이 접이식 자전거를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수성구의 한 자전거 전문점에서 고객이 접이식 자전거를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변신의 기술로 작동하는 일명 '트랜스포머' 제품들이 우리 생활에서 활약하고 있다. '합체'와 '분리'와 '장착'을 통해 화려하게 변신하며 우리에게 실용성과 편리함을 선사해 주는 각종 제품들은 만화 속에서 활약하는 변신 로봇과 닮았다.

◆변신 로봇 이야기

만화 속 로봇은 진화를 거듭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화 속 로봇은 골리앗처럼 거인의 모습을 하고 뛰거나 날며 악당과 싸우는, '쇠로 만든 힘센 장사'에 지나지 않았다. 태권V나 철인28호가 대표적이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중반부터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변신 로봇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마니아들은 1974년 첫 등장한 '게타로보'를 만화 속 최초의 변신 로봇으로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변신 로봇으로는 '볼트론'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고라이온'으로 불린 이 로봇은 각기 다른 색깔의 사자 로봇 다섯 대가 악당과 결전을 벌이기 전 힘을 모으기 위해 합체한다. 만화 속에서 고전하던 우리 편 로봇들은 뭉쳐야만(합체해야만) 악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는 변신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의 법칙이 됐다.

이후 파워레인져'건담'그랑죠 등 다양한 변신 로봇이 속속 등장했다. 점차 정밀하고 체계적이고 화려한 변신의 기술이 도입됐다. 이때부터 만화 속 로봇이라면 당연히 변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요즘 유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에 등장하는 귀여운 캐릭터들도 엄밀히 따지면 변신 로봇이다.

최근 변신의 기술이 궁극에 도달한 로봇이 등장했다. '트랜스포머'다. 1984년 미국에서 첫 방영된 애니메이션을 2007년에 영화화한 것이다. 3D기술로 재창조한 화려한 변신 장면이 압권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트랜스포머 시리즈 세 편 모두 700만 이상 관객을 끌어모았다. 변신 로봇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스마트폰 도킹형 주변기기 대세

합체와 분리는 로봇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우리 생활 속 몇몇 가전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변기기가 합체와 분리를 거듭하며 활약한다. 분리 상태였다가 필요할 때 합체해 활약하던 변신 로봇과 같은 맥락이다.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스마트폰 주변기기 매장. 중앙에 진열된 다양한 '스마트폰 도킹형 주변기기'들이 눈에 띄었다. 이는 도크(스마트폰 충전 시 쓰이는 연결단자)에 스마트폰을 꽂으면 스마트폰의 기능을 확장시켜주는 기기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꽂으면 충전은 물론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음악을 풍성한 음색으로 들을 수 있다.

매장 관계자는 "피처폰 시대에는 매장 한쪽에 휴대폰 고리 정도의 액세서리만 진열했다. 하지만 현재 가입자 수 3천만 명을 넘긴 스마트폰 시대에는 각종 주변기기만으로도 매장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그 중심에는 가격대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하는 스마트폰 도킹형 주변기기가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도킹형 주변기기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스피커다. 관련 중소업체들은 일반 스피커보다 스마트폰 도킹형 스피커 생산에 집중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도킹형 스피커 시장은 현재 약 5천억원 규모다.

이 외에도 스마트폰 도킹형 주변기기는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꽂으면 일반 컴퓨터처럼 쓸 수 있도록 한 도킹형 키보드'모니터'프린터 등이 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큰 화면으로 틀 수 있는 도킹형 빔프로젝터도 있다. 도킹형 정수기'LED 스탠드'마이크 등 이색적인 도킹형 제품도 시중에 나와 있다.

국내 한 도킹형 스피커 업체 관계자는 "스마트폰의 장점인 휴대성을 유지하면서 '도킹'을 통해 스마트폰의 첨단 기능을 확장하는 등 실용성과 편리함을 모두 충족하려는 소비자 욕구가 다양한 도킹형 제품을 출시시키고 있다"며 "앞으로 스마트폰 열기가 장기간 지속되며 다양한 도킹형 제품이 생활 곳곳에 자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신하는 생활용품들

전자기기만 합체와 분리를 통해 변신하며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생활용품들도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우리에게 실용성과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가구 분야가 대표적이다. 평소에는 침대로 사용되다 소파로 변신하고, 가벼워서 운반도 편리한 '라쿠라쿠 침대'는 특정 브랜드 이름을 넘어 변신형 가구를 대표하는 일반명사가 됐다.

덩치가 큰 가구는 변신의 기술을 공간 절약에 집중시킨다. 상황에 맞게 식탁'책상'수납장 등으로 크기와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조립식 가구가 시중에 다양하게 나와 있다. 좁은 공간을 넓게 활용하고, 기능도 여러 가지인데다 디자인도 세련된 트랜스포머형 가구가 최근 증가하고 있는 싱글족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육아용품도 트랜스포머형이 대세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기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용도에 따라 변신시킬 수 있는 제품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비용 절감 효과까지 얻는 것. 처음에는 아이의 걸음마를 돕는 보조기로 쓰다가 나중에는 자전거로 변신시킬 수 있는 제품, 의자는 물론 유아용 변기로 쓸 수 있는 제품, 기저귀 가방으로 들고 다니다가 펼치면 아이를 눕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매트로 변신하는 제품 등 다양하다. 유모차와 자전거로 분리돼 있던 것을 합체시킬 수 있는 제품도 있다. 부모가 유모차를 밀기만 하던 것을 자전거로 이동시킬 수 있어 이동성을 높였다.

◆장착하면 파워 업!

변신 로봇은 합체와 분리 외에도 '장착' 개념을 통해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 예를 들면 지상에서 싸우던 마징가Z는 등 뒤에 '제트 스크랜더'라는 비행체를 장착해야만 공중으로 도망간 악당을 뒤쫓으러 날아갈 수 있다.

요즘은 자전거가 대표적이다. 접는 자전거 등 변신형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강력한 라이트나 무선속도계 GPS(위성항법장치) 등 기능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장착용 부품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마니아들도 늘고 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튜닝도 비슷한 맥락이다. 장착할 수 있는 부품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마니아들이 느끼는 흥미와 만족이 높아진다.

장착하는 장비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변신형 제품의 고전은 경운기다. 평소에는 트레일러를 연결해 운반용으로 활약하지만 쟁기를 장착하면 논과 밭에서 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장착하는 장비에 따라 탈곡기'양수기'제초기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한다.

전동 드릴도 마찬가지다. 드릴 앞에 갈아 끼우는 장착 공구에 따라 드릴은 물론 드라이버'절단기'연마기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한다. 참고로 전동이 아닌 수동 공구로는 맥가이버칼이 트랜스포머 공구의 고전이다.

패션도 탈'부착형 아이템이 유행이다. 야상 점퍼의 경우 내피를 탈'부착할 수 있어 가을과 겨울에 걸쳐 장기간 입을 수 있는 제품이 많다. 여름 장마철 패션 아이템인 레인부츠의 경우 안감을 부착해 겨울에도 신을 수 있도록 한 제품이 시중에 나와 있다. 이들 특징은 탈'부착으로 실용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제품 디자인에 변화를 줘 지겨움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변신 용품은 창의력 원천

'캡슐가구'라는 별칭이 붙은 '캐슐로'라는 가구가 있다. 이 가구는 옷장'책상'책장'의자'싱글침대'매트리스를 가로 120㎝, 세로 80㎝, 높이 90㎝, 무게 100㎏ 정도의 상자 형태로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이를 성인 혼자서 분해 및 조립하며 펼칠 수 있다. 가구를 펼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7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신형 생활용품 속에 '창의력' 코드가 녹아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혼자서 이런저런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대구가톨릭대 유아교육과 이화도 교수는 "완성돼 있는 장난감보다는 자유자재로 합체 및 분리할 수 있는 부품형 장난감이 유아 지능 발달에 더욱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능동적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등 창의력을 쌓는다. 놀이를 넘어 창작 활동을 하는 셈"이라며 "블록 등 부품형 장난감도 좋지만 아이들은 나뭇잎'돌멩이'점토 등 자연물에 더욱 호기심을 느낀다. 그만큼 창의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