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자(65'여'대구 동구 신암동) 씨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이 평생 한(恨)이었다. 어렸을 때는 동생들을 돌보고 결혼 후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다. 글자를 쓰고 읽을 수 없어 연애편지 한 번 주고받지 못했다. 최 씨는 "연애편지 받으면 뭐합니까. 읽지도 못하는데. 누구한테 읽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속상해서 모두 불에 태워버렸죠"라고 웃었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번호와 가사를 외워 음에 맞춰 불렀다. 퇴직한 뒤 딸의 소개로 내일학교를 다니면서 움츠렸던 어깨를 펼 수 있었다. 그림처럼 보였던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 최 씨는 "재미있어서 한 자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해서 중학교 졸업장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송란(63'여'대구 동구 동호동) 씨는 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부모님이 미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오빠만 학교를 보냈다는 것. 이 씨는 글자를 몰라 늘 속상했고 부끄러웠다. 은행에 갈 때면 직원에게 "눈이 안 좋아 보이지 않으니 말하면 대신 써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학교를 다닐 때 알림장에 쓰인 준비물을 챙겨주지도, 숙제를 봐주지도 못했다. 덧셈'뺄셈이 안 돼 장을 볼 땐 남편과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럴 때면 서러움에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닌 뒤 이 씨는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이 씨는 "수학 시간이 가장 재밌다. 이젠 구구단도 외운다"고 웃었다.
12일 대구 중구 명덕초교 강당에서는 대구 내일학교(옛 성인문해학교) 1회 졸업식과 2회 입학식이 동시에 열렸다. 내일학교는 초등 학력이 없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국어와 영어, 한자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졸업을 하면 초등 학력이 인정된다.
이날 처음 '학사모'를 쓴 56명의 할머니들은 교사의 지휘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지난해 11월 입학식 때와는 달리 할머니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혼자서는 가기 어려웠던 은행'동사무소'병원에서도 당당하게 이름과 주소를 쓸 수 있게 됐다. 편지를 쓰고 책을 읽고 손주들과 문자메시지도 주고받는다. 쉬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한 결과다.
가족들은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든 늦깎이 졸업생들을 카메라로 찍었다. 졸업생 박금란(71'여'대구 동구 신기동) 씨의 딸 이상정(45'대구 동구 지묘동) 씨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학교를 다닌 뒤 활력을 되찾았다"며 "학교와 숙제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를 볼 때면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했다.
졸업생 조옥이(63'여'대구 북구 칠성동) 씨의 손녀 최윤영(21) 씨는 "식탁 위에 메모를 남기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기 선배들에 이어 2기 후배들의 학구열도 뜨겁다. 신입생 김분남(79'여'대구 중구 대신동) 씨는 "졸업장을 반드시 받고 싶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우동기 교육감은 "내일학교의 의미는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자는 뜻이다"며 "대구지역 문해교육 대상자 28만 명이 교육을 통해 삶의 주인이 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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