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몰상식·무예절 관람객 출입 사절

입력 2012-09-12 11:01:41

#1. 며칠 전 주말을 맞아 한 끼를 해결하려고 식구들과 늦은 저녁을 밖에서 먹게 됐다. 서빙하는 도우미가 따로 없는 '셀프'점이었지만 테이블마다 가스불이 놓여 있어 주의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실내 상황은 내 생각과 달랐다. 뜨거운 국물이 주요 메뉴임에도 테이블 사이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애들이 재주를 부리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내의 옷을 밟거나 스치기도 해 위험천만이었다. 보다 못해 "야!"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순간 주변의 시선은 우리 테이블로 모였다.

그 상황에서 왜 그리 큰 소리를 쳤는지 일순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애 부모와 가족들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도 식당을 나오면서 "왜 그랬느냐?"고 핀잔까지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가 애들을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요즘 자녀에게 그러는 부모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도 잘못이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중도덕은 외면당하거나 중시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날 그 아이의 부모들은 '그런 게 무슨 잘못이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어느 날 대구미술관. 대구시내 모 중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찾았다. 놀이동산으로 가서 의미 없이 시간을 때우지 않고 미술관을 찾은 사실 그 자체로는 참 잘한 선택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 대구 스타디움을 거쳐 온 학생들은 그날 무더위에 지쳐 도저히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관람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학교나 교사들은 학생들을 미술관에 풀어놓고는 그만이었다. 학생 관리의 책임마저도 미술관으로 넘어간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일까?

즉각 제동이 걸렸다. 이래서는 관람이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이 학생들의 관람은 불발됐다. 미술관 측에서는 "관람 자세가 돼 있지 않다면 누구라도 관람이 안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입장이었다. 바로 그 며칠 전, 대구미술관에서는 20대의 남녀 관람객이 전시품에 침을 뱉는 '사건'이 일어나 전 미술관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미술관으로서는 전시품에 대한 안전을 기하고, 건전한 관람 문화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였다. 미술관은 그렇게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의 여파로 대구미술관은 홍역을 치렀다. 공공시설이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관람을 막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잘못은 미술관에 있는 게 아니라 학교 측과 인솔 교사들에게 있다. 이들은 식당을 운동장처럼 휘젓고 다닌 자녀를 제어하지 않고 방치한 부모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당연히 학생들을 통제, 관리하는 책임은 학교와 교사에 있는 것이지 미술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식당에서 아이들의 관리 책임이 식당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3. 대구 북구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의 일이다. 공연 시간에 조금 늦었다.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가 있어 기다렸다. 잠시 쉬는 틈을 타 출입구 가까운 뒷자리로 안내됐다. 중간 시간에 내 자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시간에 공연장에 도착한 몇몇 사람들은 표에 표시돼 있는 자기 자리로 가려다 제지를 당했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시간을 지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관람을 방해받는 피해를 당했다. 관계자들에게 "왜 늦게 온 관람객을 들여보내느냐"는 항의라도 할 만한 상황이었다.

공연장에서의 몰상식 무예절 사례는 더 많다. 지각족뿐만 아니라 어두운 한 공연장에서 휴대전화를 켜보는 '강심장'도 부지기수다. 누군가 공연장에서의 이런 무예절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캔버스에 황칠을 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을 본 기억이 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 더 나아가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 남에 대한 배려 교육이 부족했던 결과다. 미국의 어느 공연장처럼 플래시로 몰(沒)예절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과 같은 초강력 수단은 아니더라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도 전시'공연 관람 예절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해야 한다. 공공장소 예절도 필수다. 우리 예술 교육의 목표가 연주자나 화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건전한 관람자를 만드는 데 목표가 맞춰져야 한다. 일선 학교의 협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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