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죄 지은 것도 아닌데 꺼릴 것 없죠"…일제 검문검색 현장

입력 2012-09-07 10:40:24

치안 불안탓 대부분 협조적…기소중지 3명·무면허 등 형사범 5명 검거 성

대구시 전 지역에서 일제 검문검색이 실시된 6일 오후 수성구 범어동 상가 밀집 지역에서 경찰들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시 전 지역에서 일제 검문검색이 실시된 6일 오후 수성구 범어동 상가 밀집 지역에서 경찰들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6일 오후 8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범어지구대. 70여 명의 경찰관이 조를 나눠 재개발지역이나 이면도로 등 성범죄'강력범죄 취약 지역으로 서둘러 향했다.

대구경찰청은 이날 대구 전역에서 성범죄'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일제 검문검색을 벌였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인접한 이면도로에 정복을 입은 경찰 2, 3명과 사복을 입은 경찰 2, 3명이 자리 잡고 서서 '거동수상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묻지마식 검문'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우려해 경찰은 신중하게 검문을 했다. 실제로 일용직 근로자 박모(41) 씨는 5일 오전 6시쯤 일자리를 찾아 대구 동구 신암동 용역업체를 찾았다가 불심검문을 당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경찰들이 사무실에 들어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불심검문을 한 것. 박 씨는 "돈 벌기 위해 나온 사람을 도둑놈으로 몰아가느냐.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경찰 때문에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경찰관은 "박 씨가 욕설을 하길래 진정시키려고 하다가 오해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심검문을 두고 인권침해 논란 등 시민과 경찰이 마찰을 빚자 경찰청은 6일 일선 경찰서에 묻지마식 불심검문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불심검문 적법절차 준수 지침'을 내렸다.

범죄 취약지역으로 분류된 범어동 신천시장 근처 재개발지역은 인적이 뜸했다. 경찰은 조명이 없는 주차장과 잡초가 우거진 공터를 둘러봤지만 거동수상자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검문검색 대상이 아니었다. 경찰은 지나가는 차량을 막고 내부를 검사하거나 행인의 소지품을 검사하지 않았다. 한 경찰은 "인상착의만 보고 아무 시민이나 붙잡고 불심검문을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1시간 동안 경찰은 한 명도 불심검문을 하지 못했다.

인근에 주점과 모텔이 즐비한 범어동 한 아파트 단지. 1시간 넘게 4명을 상대로 검문을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름이나 생년월일 정도만을 대답했지만 일부 시민은 주소와 연락처도 밝혔다.

작은 가방을 들고 지나가다가 불심검문을 받은 박석열(30'대구 동구 효목동) 씨는 "최근 강력범죄가 빈발해 예방 차원에서 하는 불심검문이니만큼 선량한 시민이라면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곽상준(30'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도 "정복을 입은 경찰이 경례를 하고 검문 취지를 설명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 검문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밝히길 꺼릴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최근 강력범죄와 성범죄로 치안 불안이 극에 달한 탓에 시민들은 대체로 협조적이었지만 이날 검문검색에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현경(23'여'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는 "시민들이 자주 다니는 시간에는 우범자가 오히려 적은데 효과를 높이려면 더 늦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한두 시간 정해진 장소에 잠깐 나와 있으면 오히려 범죄자는 시간과 장소를 피해 다른 곳에서 범행을 저지를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주강현(38'대구 수성구 수성동) 씨도 "경찰 검문이 범죄예방 효과를 높인다고 하지만 경찰이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범죄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면서 "이왕 불심검문을 재개한 이상 경찰 검문이 강화돼야 예방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경찰청은 이날 경찰 2천158명을 동원해 총 368곳에서 검문을 벌여 기소중지자 3명과 무면허 등 형사범 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대구 수성경찰서 범어지구대 신성식 경위는 "형식적인 검문 때문에 '묻지마식 범죄'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라 일제 검문검색을 했는데, 사전 예방효과가 생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계명대 윤우석 교수(경찰행정학과)는 "불심검문이 잠재적 범죄자를 찾아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불필요한 불심검문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생길 때는 범죄 억제력이 오히려 감소된다"면서 "피검문자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현장 경찰관이 불심검문의 목적과 대상에 대해 이해하고 검문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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