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쑥대머리 귀신형용' 판소리 명창 임방울 평전/ 이두/한길사

입력 2012-09-06 14:23:47

전설의 명창 임방울: 고독한 광대의 생애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여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서편제'는 전통예술이 쇠락해가는 시대에 소리꾼의 삶을 고집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전통예술 판소리의 의미와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영화이기도 했다.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춘향이 옥중에서 임을 그리는 애끊는 정황을 담은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은 20세기 초중반을 살다간 명창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전주 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한 천이두 선생이 쓴 '전설의 명창 임방울'은 임방울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임방울의 본명은 임성근으로, 본래 소리하는 집안의 후예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의 외숙 김창환은 당대의 쟁쟁한 명창이었다. 하지만 임방울의 아버지는 아들이 광대라고 천시 받는 소리꾼의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착실히 농사나 배우라며 인근에 머슴을 살러 보낸다. 그럼에도 그는 자나깨나 소리를 흥얼거리기 일쑤였고, 마침내 소리를 배우러 박재실이라는 스승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당시 소리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스승의 집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았는데, 스승은 유독 임방울에게 가혹해서 행랑채 헛간에 짚과 멍석을 깔고 까대기를 쳐서 문짝을 대신하고 거처하게 한다. 장래 큰 소리꾼이 될 재주가 보이는 제자에게 더 혹독한 훈련을 시켜 명창으로 키워보고자 하는 욕심에서였다. 어두컴컴한 헛간에서 임방울은 무려 3년을 머물며, 스승에게 아침나절 소리를 배우면 하루 종일 그것을 연마하는 식으로 소리 공부에 전념하였다. 여기서 죽을 둥 살 둥 소리 공부에 매달린 임방울은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박재실 선생에게서 어느 정도 소리 공부를 한 임방울의 다음 스승은 공창식이었다. 공창식을 통해 임방울은 그에게 오랫동안 후원자 노릇을 해준 화순의 갑부 남국일을 만나게 된다. 남국일은 임방울을 그의 집에 머무르게 하며 유성준에게 소리 공부를 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근대 서양처럼 우리나라에도 유망한 예술가를 경제적으로 후원해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임방울이 유성준을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예술을 성숙하게 하는 데 아주 소중한 전기가 되었다. 판소리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서편제만 알던 그가 동편제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고, 장차 두 세계의 합일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20년대 말기 서울에서 열린 전국명창대회에 참가한 임방울은 콜럼비아 레코드 회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그의 소리를 취입하고, 협률사 단원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의 '쑥대머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그의 소리를 들으면서, 소리판에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고, 듣는 이들이 '얼씨구 좋다'라는 추임새를 넣는 흥겨운 분위기를 상상해보았다. 당시 임방울은 오늘날의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고 하니, 소리판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임방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하는 등 예인으로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일제가 우리 전통예술을 말살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던 시절이었고, 판소리도 예외일 수 없었다. 판소리가 식민지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음악의 주류 자리에서 밀려나 변방 문화로 격하당하는 아픔을 임방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고스란히 겪어내어야 했다.

한때 민족의 혼과 정신을 담아 토해내었기에 민중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판소리 예술은 이제 무형문화재라는 형식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란 늘 당대의 것일 게다. 우리 시대에 우리들의 삶과 염원을 담아낸 참된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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