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횡성 어답산

입력 2012-09-06 14:31:36

왕의 발길만을 허락한 오지의 선경 발 아래 횡성호, 다도해 옮겨온 듯

'왕의 발길만을 허락한 오지의 선경, 임금이 친히 밟아본 산.'

강원도 횡성면 갑천면의 어답산은 2천여 년 전,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 쫓길 때 머물던 산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때 묻지 않은 오지의 절경 속에 자연의 옛 모습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어답산은 갑천면 삼거리저수지 동북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다. 횡성온천에서 등산을 시작해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시야 아래로 잔잔한 횡성호와 삼거리저수지가 누워 있다. 그 전경이 가히 선경이다. 하산 길은 산 뒤골 병지방계곡으로 하산해 마지막 여름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기념촬영장, 낙락장송

횡성온천 옆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산은 급경사 오르막이다. 경사가 심한 곳에는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잡고 오를 수 있도록 밧줄을 나무에 연결해 놓았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며칠 지났건만 더위는 기승을 부려 금방 땀이 온몸을 타고 내린다. 쉬엄쉬엄 오르며 왼편으로 시선을 두면 나무 사이로 횡성호와 삼거리저수지가 언뜻언뜻 보인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빽빽한 산비탈은 푸른 잎들로 그나마 눈이 즐겁다.

1시간쯤 올랐을까.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출발지인 온천과 정상의 중간 거리에 있는 높이 20m 정도의 선바위다. 나무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가파른 절벽이라 선바위에 오르기가 까다롭다. 나무나 모서리를 잡고 오르지만 밧줄도 하나 없어 심장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꼭대기는 평평해서 횡성호와 그 일대의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오른쪽으로는 구멍이 뚫린 바위 위에 소나무가 멋스럽다. 약간의 오름 후 양쪽 사면으로 벼랑을 이룬 날카로운 암릉을 통과하면 양지바른 곳에 무덤 1기가 보인다.

곧이어 돌탑이 있는 작은 암봉을 통과한다. 다시 고도를 낮춰 아래로 툭 떨어졌다가 지쳐 오르기를 몇 차례 후 어답산의 명물 300여 년 된 장송을 만난다. 양팔을 벌려 사람을 안아주려는 듯 멋스러운 낙랑장송은 등산객들의 빼놓을 수 없는 기념사진 촬영장소다. 오지랖 넓은 여인의 품 같아 소나무가 수난을 당한다. 우람한 소나무 가지가 걸터앉을 수 있게 뻗어 있어 고운 옷을 입고 여러 명이 올라가면 나뭇가지에 과일이 조롱조롱 달린 모양이다. 장송 너머로 보이는 횡성호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출발해서 2시간 후 정상을 향하는 길에 만나는 낙수대는 어답산의 백미다. 천지개벽 당시 이곳까지 물이 차올라 돌에 앉아서 낚시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높은 곳까지 물이 찼다는 것을 믿을 수는 없지만,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서면 횡성호와 산 아랫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올망졸망 크고 작은 점점이 떠있는 푸른 숲의 섬모양이 다도해를 보는 느낌이다.

낙수대를 지나 10분쯤 걷다보니 정상 장군봉(789m) 표지석이 서있다. 날씨는 따갑지만, 보란 듯 성큼 높아진 하늘이 이미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동쪽으로 멀리 태기산의 풍차가 줄지어 하얗게 반짝인다. 북으로는 한강기맥의 겹겹이 이어진 산 그리메가 아스라하다. 눈을 드니 에메랄드빛 하늘을 수놓는 구름의 유희가 현란하다.

◆하산 길에 만난 명경지수

정상 표지석 뒤 북편으로 병지방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원점회귀 산행을 하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장송과 정상 중간 부분 삼거리 갈림길로 가야 한다. 계곡이 좋은 산뒤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를 때도 급경사이지만 내림 길은 훨씬 더 급경사다. 가만히 서 있어도 주르르 미끄러질 정도로 된비알을 지그재그로 내려가자면 하산 길도 결코 만만치 않다. 계곡이 가까워지는지 잣나무 숲이 보인다. 정상에서 출발한 지 1시간 후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길 옆이 산뒤계곡이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그 맑기가 명경지수와 같다. 여러 계곡을 다녀봤지만 이처럼 맑은 물을 찾기 힘들다. 너 나 할 것 없이 배낭을 던져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급경사를 내려오느라 뜨겁게 달궈진 몸을 찬물에 담그니 김이 모락모락 난다. 물이 차서 오래 서 있지 못한다. 계곡 좌우로는 나무가 우거져 깊게 그늘을 드리웠다. 특히 선녀탕 주위는 기암괴석과 들꽃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다시 비포장도로를 40여 분 걷고 나서야 산뒤계곡이 병지방계곡과 합쳐지고 4시간 30분여의 산행이 끝난다.

병지방계곡은 어답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산세 깊은 골이다. 계곡의 수량이 풍부해 여름철 피서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외부와의 접근이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는 체류형 산촌휴양지로, 여름철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오토캠핑장도 마련되어 도시 생활을 벗어난 사람들이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병지방이란 지명은 옛날 진한의 태기왕이 병사를 모아 방비한데서 유래되었고, 소재지인 갑천면도 병사를 훈련시키다가 갑옷을 빨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왕이 다녀갔다고 어답산이라 하는데, 거친 산을 체력이 좋은 왕이 직접 올랐는지 아니면 입구만 다녀갔는지 궁금하다. 그것도 아니라 신하들이 가마를 태워 올랐다면 신하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쫓겨 이곳에 들렀다는데 박혁거세는 기원전 69년부터 기원후 4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신라의 박혁거세와 태기왕은 시대적으로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다. 그러고 보면 설(說)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설이나 신화에는 허구적이고 상상의 산물들이 많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승되는 경우도 많다.

어답산은 병지방계곡과 횡성댐, 삼거저수지와 횡성온천이 주변에 있어 등산 후 구경하며 들를 곳이 많다. 겨울철이면 삼거리저수지에서 빙어낚시도 즐길 수 있고, 중탄산 온천인 횡성온천에서 산행의 피로도 풀 수 있다. 2002년 3월 개장한 이 온천장은 수질의 청량감을 좌우하는 요소인 유리탄산의 성분이 많고 물맛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횡성호와 주변의 작은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치악산, 태기산, 오음산 등 첩첩 산줄기가 조망되는 횡성 내륙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글'사진 양숙이(수필가) yanggibi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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