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청송 앓이'를 했다. '청송부사가 되기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며 청송에 대한 동경을 시에 담았다. 청송은 선비들에게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맑은 길안천의 물줄기를 따라가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이 빚은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곧게 뻗은 푸른 나무들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선현들은 이런 풍경을 해치지 않는 곳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닦았다. 높은 재에 막혀 찾기 힘든 '비밀의 낙원'과 같은 청송. 이제 느림을 경쟁력으로 청정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길안천, '비밀의 낙원' 청송의 젖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신성계곡. 길안천에 발을 담그니 물살이 종아리를 간질였다. 허리를 숙여 머리만한 크기의 강바닥 돌을 뒤집었다. 흑갈색의 다슬기들이 돌에 붙어있었다. 놀란 다슬기들이 오물오물 느린 속도로 달아났다. 나선형 무늬의 껍데기를 잡고 돌에서 떼어내자 꼼지락거리며 속살을 감추었다. 환경부 '아름다운 생태하천 50선'에 포함된 길안천에는 물이 맑고 자갈이 많아 다슬기 같은 생물이 많이 서식한다.
길안천은 '비밀의 낙원' 청송을 흐른다. 청송은 높은 고개들에 둘러싸여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영천에선 노귀재, 포항은 꼭두방재, 안동은 가랫재, 영덕은 황장재를 넘어야 청송에 도달할 수 있다. 예부터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걸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지금도 고속도로가 없다. 4차로 도로도 찾기 쉽지 않다.
길안천 상류에 형성된 신성계곡 15km는 청송 8경 가운데 1경으로 꼽힌다. 국립공원인 주왕산보다 더 으뜸으로 평가받는 신성계곡은 안덕면 신성리에서 고와리까지 이어진다. 물줄기는 깊은 산골 청송의 산과 들을 유연하게 흘러간다.
안덕면 신성리 암벽 위의 방호정은 소나무와 절벽이 어우러진 길안천의 대표 명소다. 1619년 방호 조준도(1576~1665)는 1619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지 못해 묘가 보이는 절벽 위에 정자를 세웠다. 이곳에서 이준, 조형도, 권익, 신집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했다. 학봉 김성일(1538~1593)은 이곳에 대해 '산골짝은 첩첩이 겹쳤는데 시냇물은 몇 굽이를 흐르느냐. 외딴 마을은 골짝 어귀에 있고 높은 정자는 바위머리에 솟았다'라고 읊었다.
길안천의 백미는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이다. 활짝 핀 꽃잎 모양의 바윗덩어리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얀색 바위는 눈 덮인 알프스를 떠올리게 한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부하를 잃은 고두곡이란 장수가 이곳의 경치에 마음의 상처를 달랬고, 그 뒤 '고와동'이라 불렀다 한다.
◆청송의 보물, 주왕산
청송 땅 서쪽에 길안천이 있다면 동쪽에는 주왕산(882m)이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골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가 절경이다'고 예찬했다.
돌이 병풍을 둘렀다는 석병산이 주왕산(周王山'720m)이 된 전설이 있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799년) 주도는 주왕을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나라 군사에 밀려 결국 한반도의 석병산(石屛山)까지 들어왔다. 주도는 결국 암굴에서 토벌군에 목숨을 잃었다. 그후 주왕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바위와 암자, 굴마다 주왕의 이야기가 전한다. 국립공원 주왕산 매표소를 지나면 대전사(大典寺)가 나온다.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에서 이름을 딴 절이다. 대전사를 지나 주방천을 따라 절경이 이어진다. 30여 분 가다보면 제1폭포와 주왕굴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주왕굴은 주왕이 마지막으로 숨어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왕굴에서 제1폭포까지의 오솔길은 소나무가 우거져있다. 마치 비밀의 문처럼 협곡을 이룬 수직의 바위를 지나면 제1폭포가 나온다.
이 외에도 주왕이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 주왕의 군사가 훈련을 했다는 연하굴, 주왕의 시체를 화장했다는 범굴 등이 있다. 마 장군에게 최후를 맞이한 주왕과 그의 군사들이 흘린 피가 주방천에 흘러 그 이듬해 검붉은 반점의 수달래(산철쭉)로 피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주왕산 자락의 주산지는 청송의 절정이다. 청송의 깊은 계곡을 걸어서 만날 수 있는 주산지는 인공 연못이다. 계곡 아래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1720년 둑을 쌓기 시작해 1년 만에 완공했다. 저수지는 길이 100여m, 폭 약 50m로 학교 운동장만한 크기다.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주산지는 3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르익은 풍경을 지녔다. 한여름의 녹음을 받아낸 연못의 수면은 푸른빛으로 너울댔다. 할머니의 등처럼 굽은 왕버드나무 끝에 백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줄기에는 초록색 이끼가 자라 연륜의 깊이를 더했다.
최인서 청송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과거 선비들은 청송을 신선의 고장이라 여겼다. 속세를 버리고 심신 수양과 학문을 위해 청송에 터를 잡았다"며 "웅장하며 청정한 자연은 오늘날 청송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고 했다.
◆'느림보' 관광지로
'푸른 자연의 낙원' 청송은 자연의 속도를 닮았다. 그래서 느림의 고장으로 불린다. 청송은 지난해 6월 상주와 함께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서를 받았다. 첩첩산의 '철통방어' 속에 보존된 자연환경이 이제 청송을 찾는 이유가 되고 있다.
청송군은 지난해부터 청송읍 월외리 일대(23만6천500㎡)에 '솔누리 느림보 세상'을 조성하고 있다. 2018년까지 755원을 투입해 자연 속의 느린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 솔누리 느림보 세상은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는 마을', '자연 속에서 찾는 몸과 마음의 건강' 등의 뜻을 담아 산림 슬로시티의 모델로 조성된다.
크게 생태체험마을 지구와 주산지 에코포토벨리 지구로 구성된다. 생태체험마을 지구는 청송읍에 인접한 지역에 배치해 산림치유, 산림요양, 유기농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진다. 이곳에는 힐링센터, 산림치유 요양센터가 들어선다.
주산지 에코포토벨리 지구에는 유스호스텔과 함께 테마파크가 계획돼 있다. 주산지를 조망하고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주산지 입구에 배치된다. 주왕산 탐방로드 등 느리게 걸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워킹투어코스다.
현서면 일대에는 그린존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올해부터 2016년까지 242억원을 들여 농산물 판매'전시장, 유가공시설, 곰취, 다슬기, 양봉약초, 산채토봉 등 유기농 마을 등을 조성해 청송의 청정 농산물을 관광 상품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2014년까지 사과특화마을 등 친환경 농업을 활용해 농촌형 체험 마을을 만든다.
이상오 청송군 문화관광과장은 "길안천의 맑은 물과 공기, 푸른 들, 주왕산과 주산지 등 청송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녔다"며 "사람들이 물질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돼 쉴 수 있는 고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전거, 산악마라톤, 빙벽등반, 산악승마 등 산을 이용한 레포츠도 즐길 수 있게 청송읍 부곡리에 2014년까지 228억원을 들여 산악레포츠타운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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