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A(13) 양은 늘 외로웠다. 부모의 이혼 뒤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늘 혼자 지냈다. A양에게 유일한 '친구'는 스마트폰이었다. A양은 스마트폰으로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 친구를 사귀었다. 어느 날 A양은 앱에서 동갑내기 친구 B군을 만났다. 역시 부모가 이혼한 B군은 같은 외로움을 안고 있는 A양에게 친구처럼 다가갔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진 두 사람은 급기야 만남을 약속했고, 그날 A양은 B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상처를 줘 '영혼의 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아동 성범죄. 아동 성범죄 피해자 대다수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어린이들이다.
경남 통영에서 이웃 아저씨에게 목숨을 잃은 H(10) 양은 부모의 이혼 후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와 새벽까지 일하는 오빠를 기다리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마을버스를 놓칠 때면 동네 주민의 차를 타고 등교했던 H양은 이웃 아저씨 김모(45) 씨의 트럭에 올라타고 학교로 가던 날, 김 씨의 성폭행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했다.
전남 나주에서 납치돼 성폭행당한 7살 어린이의 어머니(37)는 아이들을 집에 둔 채 심야에 PC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딸이 납치된 때에도 어머니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전문가들은 밖으로 알려진 아동 성범죄는 전체 사건의 1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해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는 이유는 '자신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부모에게 혼나거나 가족이 해체돼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는 것. 이에 따라 어린이가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리는 사람도 본인을 잘 아는 가족이나 담임교사보다는 친구나 상담교사가 많다.
어린이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부모들이 피해 아동을 '성 문제자'로 인식해 '우리 아이가 결혼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등 과도한 걱정부터 해 아동이 회복할 가능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가족이 울면서 슬퍼한다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은 피해 아동의 입을 더욱 다물게 만든다. 결국 피해 아동은 성적으로 빨리 조숙해져 일찍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학대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를 외롭게 두지 않는 것이 아동 성범죄를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대구 해바라기아동센터 심보영 부소장은 "외로운 아이는 사람을 쉽게 믿고 따라가기 때문에 부모는 항상 아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마라'며 아이의 책임을 강요하면 아이는 성폭행을 당해도 본인의 잘못으로 알고 불안해한다"며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가 어린이에게 '우리가 안전하게 너를 보호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안전한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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