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피노키오' 가사 中
피노키오야.
장난감 나라 지나갈 때는 나도 데려가주렴.
숙제도 많고, 시험도 많고, 할 일이 많아 바쁜데
너는 어째서 놀기만 하니 청개구리 피노키오야.
우리 엄마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 줄 수 없겠니?
먹고 싶은 것이랑 놀고 싶은 놀이랑
모두 맘껏 할 수 있게 얘기 좀 해줄래?
요즘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동요 가사 속 피노키오를 부러워할 겁니다. 놀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학교 마치면 학원 '뺑뺑이' 도느라 놀 시간이 부족하고, 대구 동성로(젊은이들)나 향촌동(어르신들)과 같은 자신들만의 놀이 공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한창 공부하기 바쁠 때 아니냐고요? 학부모인 독자 여러분 중 어린 시절 친구들과 앞동네 뒷동네 몰려다닌 개구쟁이 아니었던 분 계시면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요즘 아이들 신나게, 그리고 건강하게 놀고 있는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요즘 10대들의 놀이 명소는 어디?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동성로 한 건물 지하 아케이드 게임장. 넓은 실내에는 유원지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놀이기구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디스코 팡팡' '탬버린' 등으로 불리는 이 기구는 원형의 판이 돌면서 탑승자를 가볍게 튕기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간간이 음악이 멈출 때마다 장내 DJ가 유머 섞인 코멘트를 날렸고, 동시에 즐거운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중'고등학교 하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게임장 대기실은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선 10대들로 가득했다. 교복 차림도 있었지만 벌써 티셔츠에 청바지로 갈아입고 온 10대들도 있었다. 어림잡아 30명 정도. 주말이면 더욱 붐빈다. 중학생 장모(15) 양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의 놀이기구를 갖춘 대형 게임장이 동성로에만 모두 4곳이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잇따라 생겨났다. 20대 이상 젊은이들의 여가를 위한 공간만 가득했던 동성로에 10대를 타깃으로 한 업소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 그만큼 지금껏 10대들에겐 놀이 문화 공간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오락실도 10대들의 기호에 맞춰 게임 종류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자극적인' 게임만 남았다. '철권' 등 격투 대전 게임, 전투기 게임, 총 쏘기 게임, 자동차 경주 게임 등이다. 모험을 떠나거나 퀴즈를 푸는 등 '얌전하고 지루한' 게임들은 오락실에서 일찌감치 방출되거나 구석으로 밀려났다.
오락실에서 10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은 '리듬게임'이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 여러 개의 버튼을 리듬에 맞춰 두드리며 점수를 얻는 방식이다. 시중 오락실에 설치된 오락기기 종류만도 몇 가지나 될 정도. 얼마나 인기가 높으냐 하면 10대들 사이에 리듬게임 관련 정보공유 인터넷 카페가 있을 정도고, 오락실은 10대들을 대상으로 경연 대회를 열 정도다.
고등학생 박모(17) 군은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리듬게임을 하러 온다. 한 달 용돈의 절반 정도를 쓴다. 게임을 하다 보면 독서실 갈 시간을 놓치기 일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놀기
초등학교 4학년 김모(11) 군은 최근 '마인크래프트'라는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졌다. 친구들이 하기에 따라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 이 게임이 늘 대화 주제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가 더 큰 이유다. 학교에선 선생님께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지만 학원 가는 길과 집에서 게임을 즐긴다. "부모님이 컴퓨터는 못 하게 해도 비상시 연락을 위해 스마트폰은 늘 들고 다니게 해요.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해서 이런저런 스마트폰 게임을 많이 합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놀 시간과 공간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각종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즐기는 것은 물론 '카카오톡' 등 무료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바일 메신저도 인기다.
휴대전화가 없는 미취학 아동들은 벌써부터 컴퓨터로 즐기는 놀이에 빠져 있다. 유치원생 장모(7'대구 북구 침산동) 양은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다. 부모님이 다른 사이트의 접속은 차단해도 쥬니어 네이버, 야후 꾸러기 등 포털 사이트의 어린이 전용 콘텐츠 이용은 허락했기 때문. 사이트에 접속하면 색칠하기, 인형에 옷 입히기, 퀴즈 맞히기 등 다채로운 온라인 놀이터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콘텐츠들은 사실 오프라인에서 즐기던 것들이다.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색칠을 하고, 문방구에서 종이인형 세트를 사서 가위로 오려 옷 입히기 놀이를 하고, 수수께끼 책을 보고서는 친구와 문제 내고 맞히기 놀이를 했다.
◆놀고 싶어요
상황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서는 친구들과 온라인 공간에서나마 모일 수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수성구 황금동 한 아파트단지의 놀이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모여서 어떤 놀이를 하는지 조사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1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놀이터를 찾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간간이 산책을 하던 아파트 주민들이 잠시 머무르다 갔다.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들은 아이들을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아파트를 지을 때 필수로 설치하는 조형물에 불과해 보였다.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비슷한 시각 대구 수성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 수학'영어'태권도'피아노 등 각종 과목의 학원 이름이 붙은 승합차 4대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서 있었다. 이윽고 정문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을 잽싸게 태우더니 하나 둘 떠났고, 다시 다른 학원 승합차들이 와서 아이들을 실어가기를 서너 번 정도 반복했다.
초등학교 5학년 장모(12'대구 수성구 황금동) 양은 각종 학원만 3곳을 다니고, 저녁에 집에 와서는 학습지를 풀고, 또 숙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고 나서는 TV로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보다 리모컨을 손에 쥔 채로 잠들기 일쑤다. 하루 중 유일하게 '재미난' 시간을 감당하기 힘든 피곤함이 금방 빼앗아 가버린다. 장 양은 "종종 아빠도 야근을 하고 와서는 TV를 보다가 리모컨을 손에 쥔 채로 잠들기 일쑤다. 나랑 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평일 하루 여가 시간은 195.6분이었다. 반면 방과후 공부 시간은 208분이었다. 초등학생은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는 대신 남은 시간을 학원과 학습지 등 사교육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여가 시간은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고등학생의 195.2분과 비슷했고, 중학생(241.2분)보다는 46분이 적었다. 초등학생도 벌써 바쁜 현대인을 상징하는 한 부류가 됐다.
한편, 동성로의 오락실에서 또 학교 앞에서 취재에 응해 준 청소년들은 이름'학교'집주소 등을 묻자 모두 손을 저으며 밝히기를 거부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신문을 보고 알면 혹시나 혼날까봐서란다. 오락실에 가는 것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이 무슨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취재를 마치고 보니 놀 시간과 공간이 부족한 것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터놓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도 문제로 보였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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