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나는 날국쌤이다

입력 2012-08-28 07:54:51

김은숙 성산고 교사
김은숙 성산고 교사

아이들은 나를 '날국쌤'이라 부른다. 날라리 국어선생님이란 뜻인데, 교사로서 수치스러운 별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지어준 이 별명이 싫지 않다. 아니 이렇게 불러줄 때 난 행복하다. 긴 복도를 지나가노라면 저 멀리에서도 손을 흔들며 "날국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 난 행복한 교사이다.

신규 발령 후 첫 출근의 그 가슴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 시선, 매일같이 이어지는 아이들과의 실랑이 속에서 항상 잔소리와 질책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교사가 되었는데….' 그리고는 내가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고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중물! 펌프를 통해 깊은 샘에서 물을 퍼 올리기 위해 붓는 한 바가지의 물! 나는 행복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 내면에 있는 열정과 진심을 이끌어 내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여정의 첫걸음은 뜻하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 야영 수련활동 마지막 날 학생들 장기자랑 시간에 선생님들이 깜짝 이벤트로 춤을 추기로 했는데 무대에 오르니 쑥스럽고 떨렸다. 그때 아이들 틈에서 "김은숙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이 들렸고, 그 말에 난 온 힘과 열정을 쏟아 춤을 췄다. 공연 후 아이들은 말했다. "우와, 우리는 쌤이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날라리네요! 날라리 국어쌤"이라고. 그날 이후 난 그렇게 '날국쌤'이 되었고,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첫 번째로 준 마중물이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후 아이들은 "춤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셨어요?", "꿈은 원래 뭐였어요?" 등과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어. 근데 너희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겠지? 너희가 행복한 건 뭘까 고민하다 쌤이 망가지는 걸 너희가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 쌤 춤 별로 못 추거든! 근데 사람은 행복한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 그래서 난 너희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힘들었지만 즐겁게 춤을 췄지"라고 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눈빛에서 내가 지금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가끔씩은 말보다 행동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행복 마중물을 한 바가지씩 붓기 시작했다. 맑고 바람이 시원한 날 학교 벤치에서 음악 틀어놓고 시 쓰기, 아이들이 무지 힘들어하는 날은 팝콘 기계를 가져다 달콤한 팝콘 튀겨 주기 등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다소 엉뚱하고 정신없는 나의 이 프로젝트로 '날국쌤'이란 별명이 더욱 굳어진 셈이다.

나는 나의 행동으로 아이들을 일순간 바꾸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다만 내가 행복해하며 교직 생활을 하는 모습과 열정적 모습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한다', '나도 저런 열정을 한 번 품어보고 싶다'는 마음속의 작은 울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여전히 '날국쌤'으로 남고 싶다.

김은숙 성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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