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도시서 관광도시로 문경의 꿈
백두대간 고봉(高峰)은 문경 영강을 낳았다. 1천m 이상 되는 산이 9개나 있는 문경. 하늘과 맞닿은 높은 봉우리 기슭에서 솟은 물줄기들이 문경을 적신다. 강은 계곡과 산을 굽이 돌아나가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품었다. 물줄기 곳곳에는 역사도 담겨져 있다. 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고단함, 전쟁을 겪으며 깨달았던 군사요충지로서의 중요성,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를 읊었던 옛 선비들의 풍류, 번성했던 광산업의 쇠퇴 등등. 문경은 이제 백두대간과 계곡, 절경이 펼쳐진 강과 다양한 레포츠 시설 등을 통해 경북관광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영강의 절정, 진남교반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진남교반. 영강의 물길은 산새를 닮았다. 태극 모양의 지형을 따라 강은 얹히듯 가벼운 흐름으로 태극을 그렸다. 물길은 우뚝한 산을 돌아서 피했지만, 가파르게 꺾이는 곳에선 산의 아랫도리를 깎으며 속도를 높였다. 꺾이면서 깎는 물의 흐름은 오랜 세월 동안 웅장한 기암절벽을 조각했다.
진남교반은 영강의 절정이다. 웅장한 절벽과 함께 노송,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산간 협곡에는 벼랑길인 '토끼비리'가 3㎞가량 나있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한 이 길은 조선시대 영남대로 중 가장 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진남교반 정상에는 서애 류성룡이 지은 봉생정이 있다. 서애는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과 서울을 오가며 이곳에서 여독을 풀었다. 영강의 지형을 잘 아는 서애는 저서 '징비록'을 통해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였던 진남교반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왜군들에게 내어준 것"에 대해 한탄했다.
진남교반은 영강의 두 젖줄인 문경새재 물과 속리산 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가면 문경새재가 나온다. 새재는 영남과 서울을 잇던 영남대로였다. 사람들이 가쁜 숨으로 오르던 새재길 기슭이 세종실록지리지가 밝힌 낙동강의 3대 근원 중 하나인 '초점'이다.
영강의 또 다른 젖줄인 속리산 물은 문경시 농암면에서 청호산'동장산'조항산에서 발원한 물과 만난다. 또 마성면 구랑리에서 백화산'어룡산의 물을 받아 진남교반에 이른다.
◆계곡의 절경, 구곡의 절창
산 깊고 물 맑은 문경은 계곡 천국이다. 가은읍 대야산(931m)에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이 있다. 용추계곡은 암수 두 마리 용의 승천설화가 전해진다. 넓은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은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다. 수심이 깊지 않아 여름이면 가족 단위 물놀이객이 붐빈다. 2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는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선유동계곡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이뤄져 있다.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 물이 흘러 천연 물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았다.
농암면 도장산(828m) 자락에는 쌍룡계곡이 있다. 물길이 휘감아 흐르는 이곳은 청룡과 황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웅장한 바위와 절벽, 곧게 솟아 있는 나무 등이 어울려 아름다운 자연미를 자랑한다.
계곡의 절경은 선비들의 절창을 낳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아름다운 경치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읊었다. 백두대간 중 가장 긴 구간(110㎞)을 지닌 문경에는 구곡들이 많다.
선유구곡은 대야산과 둔덕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따라 1.8㎞에 펼쳐져 있다. 선유(仙遊)라는 이름처럼 신선이 논다고 상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뽐낸다. 평평한 암반 위로 투명한 계곡물이 수천 년 동안 흘러 기묘한 형태를 빚어냈다.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조선 중기 유학자 정경세 등이 즐겨 찾았다.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쌍룡구곡은 도장산 계곡 4㎞에 걸쳐 있다. 불일산'청화산과 내서천'쌍룡천이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엄원식 문경시 학예연구사는 "물길은 문경의 정체성이다. 도시문명의 속도전과 물질문명의 폭력성에서 벗어난 '치유의 인문학' 중심에 문경의 강이 있다"며 "주변 지형과 물의 흐름이 만든 강의 속도는 느리다. 그 느림의 미학을 따라 구곡 체험, 서원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에서 시작된 관광도시 문경의 미래
탄광도시였던 문경은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40여 개의 탄광과 1만여 명의 광부가 살던 문경은 광산업이 몰락하면서 1970년대 16만 명이었던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 문경은 이제 강과 산 등 자연자원을 활용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문경시는 강을 정화하는 등 생태를 복원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3년 말까지 79억원을 들여 영강생태하천조성 사업을 진행,수질정화 및 야생동물 서식처를 마련하고 있다. 모전천, 영산천, 불정천 등 소하천을 친환경적으로 되살리고 있다.
영강을 따라 이어진 폐철로를 활용해 전국 최초로 '철로자전거'라는 관광체험거리도 만들었다. 진남역에서 출발해 2㎞를 돌아오는 코스는 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을 감상할 수 있다.
문경시는 가은읍 왕능리에 지난해부터 2016년까지 1천401억원을 투입해 '녹색문화상생벨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주변 석탄박물관과 연계해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연구'전시'체험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개발하고 있다. 상생벨트 내에 들어설 영상문화관에서 고려, 조선, 근대 역사의 주요 사건과 장면을 체험할 수 있다. 역사생활체험촌은 탄광촌의 생활문화를 재현한다. 녹색문화지구는 백두대간과 생태자원의 보존방안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계획돼 있다.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관광팀장은 "문경은 경북에서 수도권과 가장 가까워 관광시장 여건이 좋고, 문경새재, 철로자전거, 석탄박물관, 봉암사 탐방로 등 학생들의 현장학습에 알맞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민자 투자 유치 등을 통해 부족한 숙박시설을 보충한다면 수도권에서 속리산 등 백두대간을 찾는 국내 관광객과 부산으로 입국해 대구와 경주를 거쳐 유입되는 외국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는 관광 중심지가 될 것이다"고 제안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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