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살짝 정신줄 놓았다가 돌아와도 별일 없더라

입력 2012-08-18 08:00:00

심윤경 지음/문학동네 펴냄

사실 한 번 '금'을 벗어나 일탈을 한다고 해도 그리 큰 일이 아니건만 기를 쓰고 테두리 안에 갖혀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스스로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쳇바퀴 구르듯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정줄 놓고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 대리 만족에 가슴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가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이랄까.

'사랑이 달리다'는 약간은 정신을 놓은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혜나를 비롯해 그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 산다. 그러면서 아주 당당하게 말을 한다. "잠깐 미쳤다가 돌아와도 아무 일 없다구."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유쾌하고 가슴 후련하다. 무더운 여름 심각하지 않게 머리를 식히기에 좋은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하39로 달리는 여자' 김혜나와 그의 두 오빠는 모두 30, 40대 중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명백한 어른임에도, 부모의 이혼으로 경제적 토대가 통째로 뒤흔들린다. 물쓰듯 펑펑 써오던 아빠의 카드가 사라짐과 동시에 경제적 토대가 통째로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인텔리면서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트럭 운전사와 결혼한 낭만주의자이지만, 결국엔 그 몽상가적 기질 때문에 바람 나 이혼하자는 아빠를 상대로 재산분할 청구 소송도 못한 혜나 엄마. 가진 것 없는 빈털털이가 됐지만 여전히 로맨틱한 면모에 큰 씀씀이를 자랑한다. 여기에다 50억원의 빚을 안고도 제정신 못 차리고 연신 사업을 하겠다며 사고만 치는 작은오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큰오빠, 회사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당한 남편 '성민'까지 혜나의 집안에서 '제대로(?)' 된 어른은 아무도 없다.

혜나는 돈줄이 막힌 것은 물론이고 자신보다 더 철이 없는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를 떠맡아 죽을 맛이다. 그러던 중 혜나는 작은오빠의 연줄로 난생 처음 유명 산부인과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가난한 집 막내아들 출신으로 강남 최고의 산부인과 원장이 된 '정욱연'에게 흠뻑 빠져든다. '잠깐 미쳐도 별일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천지를 제대로 분간 못하는' 혜나의 사랑은 비명보다도, 운명보다도 빨리 달린다. 대신 그녀에게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우리 모두의 세상보다도 빨리 달리는, 몸을 내던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소설은 '미치광이 가족'으로 표현되는 혜나 가족을 통해 혹여나 자기들의 왕국이 무너지기라도 할까, 조금이라도 다치는 걸 두려워하며 모든 걸 '쿨하게' 흘려보내는 시대를 비튼다. 그러면서 온몸으로 달려 진정한 사랑을 찾는 혜나를 통해 지루하고 재미없는 세상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책을 덮는 순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정말 중요한 것은 없었다"는 저자의 말이 머리를 때린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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